국내 정유업계는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올해 전체 누적적자는 5조원을 넘겨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코로나발(發) 경기 침체로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든 탓입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정유업체의 석유제품 생산 비율에서 15% 정도를 차지하는 항공유 판매가 급감한 것도 큰 타격이었습니다.
정유업체가 가장 힘겨웠던 시기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떨어져 대형마트에서 파는 생수 값보다도 쌌던 4월이었습니다. 우선 정유업체가 코로나 사태 전 50~60달러대에 들여온 원유 재고 평가액이 폭락해 손실로 반영됐습니다. 또 원유는 비싸게 사왔는데 막상 석유제품을 팔 때가 되니 코로나로 소비가 감소해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적자를 키웠습니다.
정유업체의 탈출구는 유가 회복이었습니다. 소비 심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상승세를 탄 유가는 12월 들어 백신 개발과 내년 세계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배럴당 5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웃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익성에 직결되는 정제마진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입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가(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를 뺀 것인데, 업계에서는 정제마진이 4~5달러 정도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유지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제마진은 12월 들어 1달러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동안 유가와 정제마진은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는데 이번에는 왜 다르게 움직일까요. 현재 유가 상승은 넘쳐나는 글로벌 유동성에 투기 수요가 반영된 측면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반면 정유업체의 석유제품 판매 가격은 금방 올라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 재확산과 함께 소비자들의 석유제품 수요 회복세가 주춤하기 때문이죠. 원가(유가)는 상승하는데 석유제품 판매가는 올라가지 않으니 정제마진이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유업계로서는 당장의 코로나도 문제지만 전 세계 ‘탄소 중립’ 움직임이 더 큰 위기”라며 “생존을 위한 근본적 변화의 시기가 코로나 사태로 앞당겨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