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창업한 식품 가공 업체 A사의 2세 경영인 B씨는 올해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창업주인 부친에게서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연 매출 1000억원대, 종업원 250여명에 달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은퇴할 나이가 다가오면서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지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가 부담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인데, 최대 주주 지분을 상속할 경우에는 최고세율이 60%로 올라간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이다. B씨는 지분을 다른 기업에 매각하기로 했다.
B씨처럼 중소기업들이 과다한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한국 제조업의 실핏줄인 중소기업의 대(代)가 끊겨 줄폐업 사태가 벌어지면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며 상속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5일 기업 상속세율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면 27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과도한 상속세가 가업 승계 걸림돌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중소기업 가업 승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표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상속세 부담으로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중기 가업 승계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76.2%가 ‘가업 승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94.5%)은 가업 상속의 걸림돌로 상속·증여세 등 ‘막대한 조세 부담’을 꼽았다. 우리나라의 명목 상속세율은 네덜란드(20%), 독일(30%), 스페인(34%), 영국(40%) 등 주요국보다 훨씬 높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부담이 중소기업 경영자가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꺾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IBK경제연구소의 ‘우리나라 가업승계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최고경영자가 창업자인 국내 중소·중견기업 5만1256개 가운데 CEO가 60세 이상인 기업이 1만7021개로 전체의 33.2%였다. 하지만 승계를 완료한 기업은 전체의 3.5%에 그쳤다. IBK경제연구소는 “30년 이상 장수기업의 자산·매출·고용 등 경영 성과는 10년 미만 기업의 4~5배 수준”이라며 “가업 상속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중소기업 오너는 “작은 사업이라도 경영 노하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이 쉽지 않다”며 “과다한 상속세 때문에 중소기업이 승계 과정에서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인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인 중 상당수도 과도한 상속세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한국을 떠난다”고 말했다.
◇기업 상속세율 50%만 낮춰도 일자리 27만개 창출
중소기업중앙회와 민간 경제 연구 기관 파이터치연구원이 25일 발표한 ‘가업 상속세 감면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상속세율을 50% 인하하면 매출이 139조원 늘고, 일자리는 26만7000개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세금으로 나갈 돈이 기업에 대한 투자로 연결돼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리스의 경우 2003년 기업 상속세율을 20%에서 2.4%로 대폭 인하해 가업을 승계한 가족 기업의 투자가 약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상속세 인하는 우량 장수 기업의 원활한 승계를 가능케 해 결과적으로 개인과 기업,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