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률이 삼성전자 보다 더 높은 우량 기업’, ‘공기업 민영화의 최고 모범 사례’….

지난해 ‘매출 5조원 클럽'에 가입한 ‘KT&G’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이 회사의 2020년 매출액(5조3016억원)과 영업이익(1조 4824억원)은 모두 창사 후 역대 최고(最高) 기록이다. 지난해를 포함한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27.98%로 같은 기간 평균 부채 비율(22.85%) 보다 양호하다.

KT&G 주력 제품 중 하나인 '파인' 담배를 생산하는 경북 영주 공장 내부 자동화 생산라인/KT&G

뿐 만 아니다. 1988년 담배 시장 개방 이후 외국산 담배의 공세 속에서 KT&G의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7년(60.6%) 보다 더 높은 64.0%이다. 자국 담배회사가 시장 개방후 60%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세계에서 KT&G가 거의 유일하다.

국영 연초(國營 煙草) 제조소인 ‘순화국’(1883년)과 ‘전매청’(專賣廳·1952년)이 모태인 KT&G는 한국담배인삼공사(공기업·1989년)를 거쳐 2002년 민영화했다. 당시 3조원이던 회사의 시가총액은 지금은 11조원이 넘는다. 이달 현재 담배 판매량 기준 세계 5위(‘유로 모니터’ 집계)인 KT&G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① 26억→480억 개비…글로벌 시장 공략

KT&G의 진면목은 해외 공략에서 드러난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국 담배 시장에서 KT&G의 연간 판매량은 2016년 20억 개비에서 지난해 61억 개비로 수직상승했다. 2017년부터 유통 채널 확대와 전문 인력 채용 같은 노력을 벌인 덕분이다. 시장 점유율도 1.0%에서 2.7%로 높아졌다.

김관중 글로벌법인관리실장(상무)은 “치밀한 준비와 협업을 통해 비(非)미국 담배 회사로서는 가장 높은 점유율과 가장 큰 점유율 증가를 기록해 회사 차원에서 글로벌 공략에 더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담배 영업의 교두보인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KT&G 통합 물류창고/KT&G

대만의 경우, 수출을 시작한 첫해(2002년)에 3300만 개비 판매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22배 급증한 7억 7715만 개비를 팔았다.

회사 전체의 해외 담배 판매량은 1999년 26억 개비에서 지난해 480억 개비로, 수출 대상국가는 2017년 56개에서 지난해 103개로 각각 늘었다. 2015년부터는 해외 담배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계속 앞서고 있다.

더 돋보이는 것은 ‘주먹구구식(式)’이 아닌 전략과 시스템에 기반한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향(Clove·열대성 정향 나무의 꽃을 말린 것)이라는 독특한 맛의 향료를 첨가한 제품으로,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에서는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향을 담은 ‘에쎄 아우라’를 출시하는 식이다.

KT&G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공장과 판매 법인 등 현지 완결형 사업을 하고 있다. 현지 생산 공장 모습/KT&G

한 관계자는 “ KT&G의 해외 수출 담배 브랜드는 420여개 되는데, 이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제품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출 브랜드 420여개...‘현지화'로 승부

6개 현지 법인을 활용한 직접 영업과 외국 파트너사를 통한 간접 영업을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도 구사한다. 일례로 작년 초 KT&G는 중동의 담배 수입 파트너 기업인 ‘알로코자이 인터내셔널’과 2027년 6월30일까지 2조 2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의사 결정을 단축해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2019년 7월부터 본사 ‘글로벌본부’ 산하에 개척실(室)과 브랜드실을 별도 운영한다. 개척실이 해외 시장 전략을 수립하면, 브랜드실은 현지 맞춤형 세부 전략·전술을 실행하는 구조이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국내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KT&G의 해외 담배 시장 영토 확장 전략은 매우 시의적절하다”며 “역량을 계속 집중한다면 2025년까지 글로벌 담배 4강(强) 기업으로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카메룬에서 영업사원들이 활동하는 모습/KT&G

◇②4년 만에 특허 43건→1203건...기술·품질의 힘

KT&G의 또다른 원동력은 제품력이다. 1996년 11월 출시된 저타르 초슬림 프리미엄 브랜드 담배 ‘에쎄(ESSE)’가 대표적이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단일 브랜드 국내 1위인 에쎄는 세계 초(超)슬림·저타르·프리미엄 담배 브랜드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이다.

1996년 11월 출시된 에쎄는 작년 1분기까지 국내외에서 총 7200억 개비가 팔렸다. 이는 1초당 50갑씩 팔린 속도이다. 이런 상승세는 기술 개발 노력으로 뒷받침된다. 2016년 43건이던 특허 출원 건수는 2017년 95건, 2019년 431건, 2020년 1203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특허 출원을 장려하고 기술력 강화를 위해 임직원들의 ‘직무발명 보상 제도’를 최근 확대하고 ‘지식 재산’ 담당 부서를 신설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본부 연구원들이 토의하고 있다./KT&G

‘냄새 저감 담배’와 ‘하이브리드형 전자(電子) 담배’ 같은 차별화된 혁신 제품은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수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2017년 11월 내놓은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은 출시 1년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했다.

‘릴’ 첫 모델 출시후 KT&G는 3년 만에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7개 모델을 내놓았다. 무게를 40% 줄인 ‘릴 미니’, 듀얼 코어 히트를 적용한 ‘릴 플러스’, 세계 궐련형 전자담배 최초로 모든 작동 버튼을 없앤 ‘릴 하이브리드 2.0’….

KT&G의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과 전용 궐련 '핏'이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 전시돼 있다./조선일보DB

미국 담배기업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은 작년 1월 KT&G와 계약을 맺어 PMI의 유통망을 통해 ‘릴’을 판매하고 있다. 오치범 KT&G R&D본부장은 “‘아이코스' 전자 담배를 보유한 PMI가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우리의 ‘릴’ 제품을 파는 것은 PMI도 ‘릴’의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③혁신 리더십과 신바람 조직 문화

혁신 경영 드라이브와 합리적 리더십 같은 조직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공기업 시절이던 1997년 7689명이던 임직원은 2020년 12월 말 기준 4435명으로, 15개이던 공장은 5개로 줄었다. 외형은 가볍지만 생산성과 효율이 높은 내실(內實) 기업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KT&G의 성공 요인으로 임직원들이 비전과 목표를 공유해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점을 꼽는다. 특히 2017년 11월 “2025년까지 ‘글로벌 톱4 담배 기업’으로 성장”을 약속한 글로벌 비전 선포가 분수령이 됐다는 지적이다.

“2025년까지 ‘글로벌 톱4 담배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한 KT&G '글로벌 비전 선포식' 모습. 2017년 11월30일 대전 본사에서 열렸다./KT&G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KT&G 전체 주식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40%에 달한다”며 “이는 외국인들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KT&G의 지배 구조와 독립된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 중심 책임 경영을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 담배인삼공사 공채 출신 첫 CEO로 발탁돼 올 3월 재연임에 성공한 백복인(56) 사장의 리더십도 주목된다. 터키 법인장을 거쳐 만 50세에 CEO를 맡은 그는 “우리가 살 길은 해외 시장 밖에 없다”는 지론으로 궐련 담배와 전자담배를 모두 성장시키는 ‘양손잡이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2021년 3월 1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백복인 KT&G 사장/연합뉴스

그는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매년 세계 20개국 이상에 신규 진입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질적(質的) 성장의 강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학벌과 연공서열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능력과 실적 중심으로 인사(人事)하는 조직 문화도 경쟁력 요인이다. 실제로 백복인 사장과 3명의 부사장 등 최고 경영진은 모두 비(非)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이다. 핵심 요직을 맡고 있는 방경만(50) 부사장(사업부문장 겸 전략기획본부장)과 이상학(50) 부사장(지속경영본부장)은 각각 만 43세와 44세에 상무로 승진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한 간부는 “아랫사람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경청하는 상향식 문화가 뿌려내려 있고, 좋은 실적을 낸 사원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보상해 50년간 국영, 공기업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직 활성화와 직원 마인드 리프레쉬(Refresh)를 위한 KT&G 사내 '문화의 날' 행사 모습/KT&G

◇ESG경영 모범... “신성장 동력 적극 육성해야”

KT&G는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의미하는 ‘ESG 경영’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다. 사회공헌 분야에만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조968억원(누적 기준)을 썼다. 작년 한 해에는 총매출액의 2%에 해당하는 671억원을 지출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올 3월 전 세계 8500여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ESG 평가’에서 KT&G는 ‘글로벌 톱 3’ 담배 기업들보다 높은 ‘AA 등급’을 받았다. 특히 ‘제품 안전 및 품질 분야’에서 KT&G는 11개 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KT&G는 ESG 경영 모범 기업으로 꼽힌다. 사진은 임직원들이 잎담배 농가 봉사활동을 벌이는 모습/KT&G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코로나 19 상황이 지속되도 KT&G는 2021년에도 양호한 실적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목표 주가 11만4000원을 유지한다”(박희진·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위원).

조미진 NH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2월5일 내놓은 실적 보고서에서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5% 넘게 증가하며 시장 기대치를 웃돌았다”며 “올해에도 해외 매출 성장을 통한 실적 우상향(右上向)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정부 소속 전매청으로 출발한 KT&G는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제도를 정착시키고 내부 혁신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라며 “담배와 인삼 외에 신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