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위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최근 열린 실적 보고 행사에서 “올 1분기 분기 순이익이 50억~52억위안(약 8600억~89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회사의 작년 연간 순이익(50억위안)을 뛰어넘는 수치다. BOE의 주력 사업인 LCD(액정 표시 장치) 패널 수요가 폭증하면서 단 한 분기 만에 일년 장사를 한 셈이다. 같은 날 중국 2위 디스플레이 업체 CSOT 역시 “올해 1분기 추정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LCD 세계 최강자였던 한국 기업들이 사업 철수 절차를 밟는 가운데,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역대 최고 수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이후 TV 등 IT 기기용 LCD 수요가 폭증하면서 LCD 패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중국 기업들이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한국의 빈자리를 꿰찬 중국 업체들이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사업 철수 타이밍이 나빴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한 LCD
온라인 매체 중국경제망은 “LCD 시장이 부르는 게 값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 됐다”며 “이런 추세는 올해 내내 지속될 전망이며, 가격 주도권은 중국에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32인치 LCD 패널 가격은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작년 3월 38달러에서 올 3월에는 77달러로 치솟았다. 65인치 대형 패널 가격도 같은 기간 175달러에서 254달러로 급등했다.
BOE와 CSOT 등 중국 기업들이 LCD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가격 상승의 한 요인이다. 중국은 올해 글로벌 LCD TV 패널 시장에서 매출 기준 59.7%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중국 외 대만(18%), 한국(14%), 일본(8.3%) 기업들도 LCD를 생산하지만, 가격 주도권에서 중국 기업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디스플레이 전문 시장조사 업체 DSCC는 “올 2분기에도 LCD 패널 가격은 전 분기 대비 12%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LCD 사업 철수 절차를 밟아왔던 삼성과 LG디스플레이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삼성은 지난 2일 중국 쑤저우에 있는 LCD 생산 라인을 중국 CSOT에 매각하면서 LCD 생산 능력이 월 17만장(2019년) 수준에서 월 8만장으로 하락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 국내 TV용 LCD 패널 생산을 접을 계획이었지만 LCD 가격이 폭등하자 생산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TV 원가 폭등…삼성전자·LG전자도 난색
LCD가격 폭등에 삼성전자·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TV 제조사들은 비상이다. LCD TV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65인치 UHD(초고화질) LCD TV의 마진율은 지난해 11월 4%에서 올 2월 1%대로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LCD 가격 상승을 버티지 못한 중국 샤오미·TCL·하이센스는 각각 TV 제품 출고가를 5~10%가량 올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당장 TV 출고가 변동은 없다”고 밝혔지만, TV 판촉 비용을 대폭 줄이고 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LCD 패널 가격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국내 업체들도 상당한 원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