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는 2013년 창업주가 별세한 뒤 상속세 1200억여원을 마련하지 못해 유족들이 회사를 농협경제지주에 매각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 업체였던 쓰리세븐도 2008년 상속세 문제로 지분이 전량 중외홀딩스에 매각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때문에 국내 중소·중견 기업이 가업을 포기하거나 기업이 매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도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받아야 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최고 부호인 삼성가조차 보유 재산으로 상속세(12조원)를 일시불로 내지 못하고, 수조원대의 대출까지 받아 5년간 분납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각종 부작용에도 현 수준의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 최대 주주에 대한 징벌적 과세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이 스웨덴 기업이면 상속세 ‘0’원
국내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기업 최대 주주가 지분을 승계하는 경우에는 주식 가치에 20%가 할증돼 최고 세율이 60%까지 오른다.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OECD 국가 평균 상속세 최고 세율은 27.1%다.
세계적인 추세는 소득세를 높이는 대신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OECD 37국 중 스웨덴·호주 등 15국은 상속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고 있다. 스웨덴은 한때 상속세 최고 세율이 70%였지만, 가구 회사 이케아 등이 이를 견디지 못해 해외 이전을 추진하자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22국 중에서도 스위스·룩셈브루크·헝가리·슬로베니아 등 4국은 자녀를 포함한 직계비속에게 상속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19국에서 부모의 유산을 자녀가 받았더라도 상속세를 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삼성이 스웨덴·호주 기업이었다면 상속 단계에서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향후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할 때만 세금(자본이득세)을 내면 된다.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유지하면서 소득세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세법개정안으로 신설된 10억원 초과 구간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기존 42%에서 45%로 인상돼, 소득세율 순위도 OECD 국가 중 7위로 높아질 전망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상속세는 소득세를 납부하고 남은 재산에 대해 과세한다는 점에서 이중 과세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국내 기업인들은 소득세와 상속세 부담으로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말했다.
◇상속세가 창업 동기도 꺾어
중소·중견기업 중에서는 상속세 때문에 아예 사업을 매각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곳도 많다. 1973년 설립해 한때 세계 1위 콘돔 생산 업체였던 유니더스도 2015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이 별세한 뒤 상속세 때문에 국내 사모펀드에 회사를 매각했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2016년 68억800만달러(약 7조5400억원)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나 2019년엔 154억2000만달러(17조9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이 해외에 세운 법인 수도 2016년 1684개에서 2019년 2063개로 늘었다. 한 중소기업인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국내에는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해외로 생산 터전을 옮기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상속세가 창업 동기를 꺾는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한국적 문화에서 상속은 창업과 기업 경영의 강한 동기 부여 요인”이라면서 “부의 대물림을 막으려 지나친 상속세를 부과하다 보니 기업을 키우겠다는 의욕이 사라지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상속세율이 높은 일본에서도 중소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으로 폐업하는 일이 잇따르자 최근 상속세를 공제해주는 가업 승계 제도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상속세 과세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보다 폐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은 2018년부터 비상장 중소기업이 주식을 상속할 경우 100% 상속세를 면제해 준다. 그러자 가업 승계 신청 건수가 제도 변경 전인 2017년 396곳에서 2019년 3815곳으로 10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재 상속세는 과거 소득세를 충분히 걷지 못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제도”라면서 “현 방식대로라면 소득세를 상당액 냈는데도 또 상속세를 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경영권 승계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상속세율을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