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올 1분기까지 매 분기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며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국제선 운항이 코로나 사태로 마비되면서 인건비·비행기 리스료 등 고정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대형 항공사들은 화물 전용기를 운영하면서 여객 사업 부진을 만회하고 있지만, 여객 사업에만 매진해온 LCC 업계는 부진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LCC 업체 한 임원은 “그동안 유상증자와 대출 등 돈을 끌어쓸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고 통장 잔고도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며 “이 상황이 올해도 지속된다면 도산하는 업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LCC 업계 1분기 적자 2300억원
올 1분기 LCC 업계는 참담한 수준의 실적을 냈다.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이 영업 손실 859억원을 기록했고, 진에어는 영업 손실 600억원을, 티웨이항공은 448억원을 기록했다. 에어부산도 472억원의 적자를 봤다. 이 4개 기업의 적자 규모만 2379억원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해 1분기보다도 적자 폭이 80억~200억원 이상 커졌다.
재무 건전성에도 잇따라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진에어의 부채 비율은 현재 1793.4%에 달하고, 에어부산은 1745.7%, 티웨이는 922.1%, 제주항공은 681.5%다. 장기 적자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 부분자본잠식에 빠졌다. 티웨이는 지난달 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당장 자본잠식은 면했지만 현 상황이 몇 달 더 이어질 경우 자본잠식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 항공사들은 그동안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국제선 대신 국내선을 최대한 운영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지난달 국내선 이용객은 297만5030명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147.8% 증가했는데도 항공사들이 저가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적자 규모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LCC 업체 관계자는 “어떻게든 승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경쟁적으로 커피 한 잔 값에 제주행 티켓을 파는 상황이라 비행기를 띄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LCC의 주력 사업인 중·단거리 국제선 운항이 회복되지 않는 한 실적 반등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비행기까지 반납하는 LCC
LCC 업계는 항공기 리스료라도 줄이기 위해 비행기 숫자도 줄이고 있다. 업계 1위 제주항공은 지난 1월에 1대, 지난 3월에 2대를 반납해 비행기 수가 당초 44대에서 41대로 줄었다. 진에어도 지난 1월부터 이달 말까지 5대를 반납해 23대로 줄어든다. 에어부산과 티웨이도 지난해 하반기 각각 4대, 1대를 반납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행기는 제조 업체로 치면 공장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비행기 보유 대수가 많아야 코로나 종식 이후 여러 노선에 취항해 매출 신장을 기대할 수 있는데 비행기 수를 줄인다는 것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미래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정부가 항공사들에 지급해온 유급 휴직 고용유지지원금의 지급 기간이 다음 달 종료돼 항공사 직원들은 무급 휴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한 LCC 직원은 “유급 휴직 시에는 정부와 회사가 부담해 평균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지만 무급 휴직의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평균 임금의 5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유급 휴직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간을 지난해처럼 연간 180일에서 240일로 늘려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현재 LCC 업계에는 직원 9000여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 외에는 답이 없다고 말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지난 3월 정부가 2000억원 수준의 자금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실사도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위기는 항공사들의 경영 실패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외부 요인 탓이기 때문에 항공사들의 숨이 넘어가기 전에 정부가 서둘러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기업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