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지난 10일부터 보름 넘게 일반 상선을 만드는 작업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지난 8일 한 독(dock)에서 일하던 협력 업체 직원 1명이 추락사하자 고용노동부가 사고가 일어난 독을 포함한 상선 건조용 독 5개의 고소(高所) 작업(높은 곳에서 일하는 작업)을 모두 중지시킨 것이다. 정부는 고소 작업만 중지시켰다고 하지만 선박 건조 공정 대부분이 고소 작업이라서 배를 아예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조선 업체 관계자는 “안전사고 발생과 직접 관계없는 작업까지 완전히 중단됐다”며 “과도한 작업 중지 명령 때문에 공정이 지연돼 선주의 신뢰를 잃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작업 중지 명령’ 남발로 인한 제조 업계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업 중지 명령은 사망 사고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고용부가 해당 사업장의 작업을 일정 기간 중지시킬 수 있는 법적 권한이다. 그러나 고용부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작업장에도 유사 업무라는 이유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다 보니, 사고 발생 때마다 공정 자체가 올스톱해 기업들이 수백억 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 재해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사고와 무관한 사업장까지 무조건 세우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툭하면 작업 중지
안전사고 발생 사업장에 작업 중지 명령이 본격적으로 내려진 것은 2017년부터다. 그해 9월 고용부는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체 업무 지침을 만들었다. 당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전복돼 6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경제 단체를 중심으로 “법률상 근거 없는 초법적 권한”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지난해 1월 작업중지명령권을 법으로 명문화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 17일까지 1년 4개월간 작업중지명령권은 총 597건, 월평균 37건 발동됐다.
문제는 작업 중지 명령이 고용부 산업안전감독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사고와 직접 관계없는 장소에까지 일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안전감독관이 사고 현장을 둘러본 뒤 구두나 유선상으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곧바로 유사 사업장으로 작업 중지 범위를 확대하는 식이다. 실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지난 20일 50대 근로자가 추락해 숨지자 고용부는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나머지 독 7개의 작업도 모두 중지시켰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지난 8일 제1열연공장 가열로에서 40대 근로자가 설비에 끼여 숨지자, 고용부는 유사 공정이라는 이유로 철근 공장 가열로에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국내 최대 철근 생산사인 현대제철의 가동 중단으로 일부 건설 현장까지 멈춰 서기도 했다.
작업 중지 해제도 객관적 기준 없이 고용부 심의위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 이 때문에 한 달간 공장이 쉬는 경우도 있다. 제조 업계 관계자는 “보호구 미착용, 출입 금지 규정 위반과 같은 근로자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거나 시정명령만으로도 즉시 개선이 가능한 경우에도 정부는 일단 작업 중지 명령부터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별로 수백억 원대 손해
작업 중지 명령을 받은 각 사업장에서는 수백억 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선박 건조 작업이 중단되면서 협력사 88곳이 매일 총 13억여원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 현대중 사내 협력회사협의회 양충생 회장은 “작업 중지로 협력 업체 직원 7300여명이 일손을 놓고 있다”면서 “사태가 더 길어지면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용접·도장 등 필수 인력들이 다른 지역이나 업체로 떠나 작업 재개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협의회는 지난 18일 고용부에 작업 중지 해제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고용부는 재해 재발을 막으려면 작업 중지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작업 특성상 공정 전체가 중단될 수도 있지만 감독 권한을 가진 주무 부처로서는 사고 확산을 막고 시설 개선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