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인 지난 28일 오전 10시 충북 충주의 화장품 제조회사 에네스티의 사무실엔 당직 4명만 출근했다. 직원이 40여 명인 이 회사는 전 직원이 하루 8시간 30분씩 4일, 주 38시간씩 일한다. 매주 금요일은 공식 휴무일이고, 두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당직자만 출근한다. 용민기 마케팅1팀 부장은 “2011년 주 4일제를 시작하면서 이직률이 10%에서 3~4%대로 낮아졌다”며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고 업무 효율에도 긍정적이어서 주 5일제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스페인 등에서 주 4일제 실험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일부 항공사와 여행사, 호텔·면세점 등이 비용 절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 4일제를 도입했지만, 최근엔 대기업·IT기업을 중심으로 주 4일제부터 주 4.5일제, 격주 4일제를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얘기만 같았던 주 4일 근무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직원은 “워라밸”, 기업은 “인건비 절감”
기업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주 4일 근무를 도입하고 있다. 먼저 일과 개인의 삶에서 균형을 찾는 ‘워라밸’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목적이다. 요즘 인재난을 겪고 있는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대표적이다. 신생 게임회사 ‘엔돌핀커넥트’, 독서 플랫폼 회사 ‘밀리의 서재’ 등이 최근 주 4일 근무를 시작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회사 ‘카페24’와 게임업체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격주 4일 근무를 도입했고, SK텔레콤도 매주 셋째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숙박 플랫폼 회사 ‘여기어때’는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주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직원들이 월요병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느니 이 시간을 아이 돌봄이나 은행 업무 등에 쓰고, 나머지 시간에 몰입 근무를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특정 시기에 집중 업무를 해야 하는 게임업계의 경우도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주 4일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직원 복지 차원에 더해 기업들로서는 주 4일 근무를 통해 임금 절감 효과를 꾀하려는 측면도 있다. 특히 코로나로 매출 타격이 큰 신라호텔·롯데면세점 등은 임금을 동결하고 주 4일 혹은 주 3일 유연근무를 적용하고 있다.
◇”일만 늘었다” vs “노는 꼴 못 보겠다”
시행 초기인 만큼 주 4일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최근 한시적으로 주 4일 근무를 도입한 한 대기업의 익명 게시판엔 “주 4일 근무하는 동안 상사가 ‘너희들 놀러다니는 꼴 볼 수가 없어서 주 5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더라” “휴무인데도 새벽부터 밤까지 메신저로 메시지가 오고 바로 답하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주 4일이 아닌 24시간 근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야근과 초과근무에 익숙한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주 4일제를 시작하다 보니, 근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잡플래닛 같은 기업 리뷰 플랫폼에는 “매일 야근하는 회사 문화에서 도저히 52시간을 맞출 수가 없으니 그냥 주 4일 출근으로 못 박아버린 것” ‘말이 주 4일, 포괄근무제로 초과수당 없음. 긴급업무 생기면 사실상 주 7일”이라는 등의 비판도 올라오고 있다.
임금이 줄기 때문에 주 4일 근무를 반대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팀장은 “주 4일 근무를 하고 수당이 깎이면서 월급이 20%가량 줄었다. 외벌이를 하는 입장에선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직원 익명 게시판엔 “주 4일 근무를 회사 전체에 일괄 도입하지 말고 선택제로 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이런 이유로 주 4일제를 철회하는 기업도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작년 기업 운영의 효율을 위해 주 4일제를 시작했다가 올해 다시 주 5일제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