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옛 부영CC 골프장. 드문드문 잔디가 남은 허허벌판엔 뽀얀 흙먼지가 일었고, 멀리서 굴착기 한 대가 느릿느릿 흙을 퍼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와 김영록 전남지사, 여권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한전공대(한국에너지공과대) 착공식이 열렸다. 그동안 부지 정지 작업 등을 해오다 오는 9월 수시 모집을 석 달여 앞두고 터닦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대선 직전인 내년 3월 ‘세계 일류 에너지 특화 연구 중심 대학’ 간판을 내걸고 개교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현재 교수진의 20%만 뽑은 상황이고, 그나마 확보된 교수진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특성화 대학의 핵심이 우수한 교수진인데 수험생들이 교수진도 모르고 어떻게 지원하느냐”고 말했다.
◇수시 모집 석 달 앞두고 착공, 건물 1동 준공도 못 하고 개교
한전공대는 2025년까지 대학 캠퍼스 40만㎡에 주변 산학 클러스터 40만㎡, 연구시설 40만㎡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에너지공학부 단일 학부에 400명(각 학년 100명), 대학원생 600명, 정원 외 외국인 300명을 합쳐 총 정원이 1300명이다. 교수진은 100명, 직원 100명 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다. 대학 측은 지난달 26일 단일 학부를 모집 단위로 수시 90%, 정시 10% 선발을 내용으로 한 2022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을 발표했다.
하지만 9월 수시 모집인데 당장 건물 하나 없는 형편이다. 대학 측은 지하 1층·지상 4층에 연면적 5224㎡ 규모 건물 1동(棟)을 우선 지어 임시 사용 승인을 받아 내년 3월 개교하기로 했다. 부족한 연구 시설은 전남 나주혁신산업단지에 올 10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한전 전력연구원 산하 에너지신기술연구소 안에 임대로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대학 측은 학생들 전원에게 기숙사 무료 제공을 약속했지만, 기숙사는 ’2025년 전까지 완공' 계획만 있을 뿐이다. 내년 입학하는 학생들은 나주혁신도시 내 임차할 임시 기숙사에 머물러야 한다.
교수진 충원도 지지부진하다. 당장 내년 개교를 앞두고 있지만, 현재까지 대학 측이 확보한 교수진은 22명이다. 올해 말 33명까지 충원한다는 계획이지만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충원율은 30%에 그친다. 학교 측은 교수들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초 한전은 노벨상 수상자 같은 ‘스타 교수’를 총장으로 모셔와 미 명문대 총장 수준인 10억원 이상의 연봉을 주고, 모든 교수에게 국내 다른 과기대 교수 평균 연봉의 3배(4억원) 이상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계적 석학을 초빙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교육과정에 미래 핵심 에너지 ‘원전’은 없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5대 중점 연구 분야는 에너지 AI(인공지능), 에너지 신소재, 차세대 그리드, 수소 에너지, 환경·기후 기술이다.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 ‘소형 모듈 원전(SMR)’ 등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글로벌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국내 에너지 분야 한 교수는 “세계 일류 에너지 특화 대학을 추진한다는 한전공대 연구 분야에서 원자력이 빠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령 인구 감소 등 설립 타당성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설립되는 한전공대 탓에 적자 투성이 한전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전공대 설립·운영 비용은 개교 후 10년 뒤인 2031년까지 1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전의 중장기 재무 관리 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내년엔 영업이익이 1343억원으로 쪼그라들고, 2023년(-1조4589억원)엔 영업적자로 돌아서 2024년엔 적자가 2조5853억원에 이를 것으로 자체 전망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한전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기업인데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부채가 132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막대한 부담을 떠안았다”며 “한전 재무 상황이 악화하면 결국 전기료나 국가 재정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