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3조원을 투자해 건설하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정유, 화학, 통신, 반도체가 주력 사업이었던 SK그룹은 첨단 소재, 배터리, 바이오, 친환경 등 미래 산업으로 사업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정유·통신·화학·반도체로 대표되던 SK그룹 사업 포트폴리오가 첨단 소재·바이오·배터리·수소 같은 미래 산업 선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더라도 미래 성장 잠재력이 없다고 판단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면서 그룹의 체질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SK의 모습은 속도감 있게 사업 결정을 내리는 스타트업을 떠올리게 한다”며 “덩치가 큰 회사도 방향 설정만 제대로 된다면 혁신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은 같아도 사업은 다르다

SK그룹의 체질 개선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회사는 SKC다. 2017년 우물에서 벗어난다는 ‘탈정(脫井)’을 선언한 SKC는 이후 4년 만에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화학, 반도체 소재사업으로 주력 사업을 근본적으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들여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동박 제조업체 KCFT(현 SK넥실리스)를 인수했고 2025년까지 세계 최대 수준(연 20만t)의 동박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반면 지난해 6월 글로벌 1위 PI(휴대폰 기판용 필름) 제조사인 SKC코오롱PI 지분을 매각했고, 같은 해 8월엔 천연 화장품 원료를 제조하는 SK바이오랜드 지분을 전부 팔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SKC를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SK그룹의 사업 전환

SKC뿐 아니다. 국내 정유 4사로 꼽혀온 SK이노베이션은 2차전지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올 1분기 영업이익 5025억원 중 석유사업에서 4161억원을 올렸지만 정유에서 번 돈을 모두 배터리 사업에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현재 3조원을 투자해 미 조지아주(州)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에너지부문 계열사 SKE&S는 가스발전회사에서 수소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회사는 LNG(액화천연가스)에서 추출한 블루수소(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지난해 말 수소 사업을 전담하는 ‘수소사업추진단’을 신설하고 추형욱 SKE&S 사장에게 단장을 맡겼다. SK건설은 최근 SK에코플랜트로 아예 사명까지 바꾸고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SK는 1993년 신약 개발에 뛰어든 이후 바이오 사업에도 뚝심 있는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2002년 “바이오 부문을 2030년 이후 그룹 중심축의 하나로 세우겠다”고 선언한 뒤 지주회사가 신약 개발 조직을 챙기며 기술개발에 투자해왔다. 그 결과 SK바이오팜·SK바이오사이언스·SK팜테코가 탄생했다.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은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신약 허가를 받았다.

◇”정유·화학은 미래 없다” 대거 정리

SK그룹은 친환경 시대에 굴뚝 산업은 미래가 없다고 보고 관련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월 윤활유 제조 자회사 SK루브리컨츠의 지분 40%(1조1000억원)를 국내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자회사 SK종합화학 지분 일부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재원 마련 차원”이라고 밝혔다. SK네트웍스도 지난해 주유소 영업권을 1조3000억원에 현대오일뱅크에 매각했다. SK텔레콤은 올해 초 야구단도 운영 실익이 없다고 보고 신세계그룹에 매각했다.

지주회사 SK㈜는 투자전문회사로 전환한 뒤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로 수익을 내고 있고, 통신 1위 기업 SK텔레콤도 현재 추진 중인 인적 분할이 마무리되면 투자와 인수·합병에 공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하지만 SK그룹의 과감한 변신이 투자 수익이 아닌 그룹의 미래 동력 확보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지주회사를 선언한 SK㈜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에 지분 투자하고 있지만 증시가 위축될 경우에는 상당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