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서 일자리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자동화 추세와 경제정책 실패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 부분의 빠른 자동화에 맞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사례로 헬스케어, 관광, 교육, IT(정보통신) 소프트웨어 부문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이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신사업을 키워야 일자리 창출이라는 파생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이경미 차움 푸드테라피클리닉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그가 헬스케어 부문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의사 가운데 처음으로 음식을 이용한 질병 예방이라는 ‘푸드테라피’ 개념을 환자 치료에 전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환자들이 몰려와 대박을 쳤다고 한다.
이 교수가 말하는 ‘푸드테라피’란 무엇일까? 어떻게 병 치료에 적용하고 있을까? 새 치료법이 지속가능 하려면 경영 수지도 맞아야 할 텐데 그는 어떤 운영 전략을 쓰고 있을까?
이 교수는 “헬스케어는 병이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되기 전에 미리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현재 한국 의료계는 주로 사후 치료 위주로 의료행위가 이뤄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헬스케어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또 “푸드테라피적 접근법이 외국 환자들의 많은 호흥을 받고 있어서 글로벌 환자 유치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을 계획”이라며 “새로운 개념의 치료가 국내에서도 더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이후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일한 뒤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통합의학센터에서 통합의학을 공부했다. 지난 2017년 3월부터 차병원 계열인 차움 푸드테라피클리닉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2 차움의원 3층에 위치한 이 교수의 푸드테라피클리닉 진료실에서 진행됐다. 도산대로 쪽 벽의 오른쪽에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유리창이 인상적이었다. 창 너머로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한 조각이 보였다.
건강-미병-질병
일반인들에게 푸드테라피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래서 푸드테라피가 무엇인지 첫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뜻밖에 이 교수는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견해로 답변을 시작했다.
“의료 시스템을 헬스케어(healthcare) 시스템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는 헬스와 케어가 없다.”
—무슨 뜻인가?
“인간의 신체 상태는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눠진다. 건강-미병(未病)-질병이다. 이 3가지 단계 가운데 건강과 미병은 헬스 부문에 속하고, 이것을 개선하는 것이 헬스케어이다. 질병은 의료 부문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등 4가지 측면이 모두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발병하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 건강검진에서 문제가 없으면 몸에 이상이 없고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은 없는데 건강하지는 않은 상태가 있다. 검사 수치에 문제는 없는데 항상 피곤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단계를 미병이라고 한다. 미병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질병 치료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질병 단계로 악화되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한국의 병원이나 의료진들이 이러한 헬스케어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질병이 발견되고 나서 사후에 치료하는 행위가 99%이다. 최근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건강 검진은 질병을 미리 발견해 치료하자는 의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미병 상태의 환자를 건강하게 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과정은 아직 미비하다.
그런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병에 걸린 뒤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되도록 병에 안 걸리고 싶어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정신과 신체의 활력을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어한다.”
현재 의료시스템의 한계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나?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가 되어 임상강사를 하던 시절에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환자를 진료하면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만성질환 환자에게 약처방을 하고 3개월, 6개월 후에 다시 보면 상태가 더 나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는 약 개수가 늘어나거나 다른 질환약이 추가되게 되어 의사로서 답답함을 느꼈다.
대부분 환자들의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 생활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질적인 방법이 없을까 하고 찾았지만 현재 의료시스템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 찾을 수 없었나?
“현재 의료 시스템에는 헬스와 케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헬스케어를 하려면 의사들도 예컨대 영양이나 운동을 전문적으로 처방하고 지도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데 사실상 이런 교육을 받은 의사가 없다. 의과대학 6년과 인턴-레지던트 5년 동안 이런 교육에 배정된 시간은 0(제로)이다. 질병과 치료에 대한 교육만으로 의과대학과 수련과정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주고 시술을 해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환자의 영양 상태와 운동,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과 같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 건강을 증진시키는 분야에는 보험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상 ‘3분 진료’라고 불리는 진료 시간도 이를 어렵게 한다. 그러니 의사들이 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고 관심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실행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환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환자들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오지 않는다. 병원을 병이 생긴 후 치료하는 기관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이후에 어떻게 됐나?
“레지던트와 임상 강사 과정을 끝낸 뒤 15년 전에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5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비만, 당뇨병, 골다공증, 신경정신과 질환, 암과 관련된 신약의 임상 개발 업무였다. 그 때 약의 부작용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약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득실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지혈증 약의 경우 근육병이 생길 수 있고, 관절염이나 피부염 때문에 스테로이드 제재를 많이 쓰면 당뇨병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약은 수치나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지 근본 치료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30 대 중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통합의학센터로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을 공부하러 갔다.”
미국에서 해답을 찾다
—통합의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애리조나대학교의 앤드류 와일(Weil) 교수는 서양의학이 질병의 치료에 특화되어 있어서 질병 예방이나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에 대한 답을 주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세계의 치료법들을 섭렵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현대 의학에 통합시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가장 핵심은 특정 관점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중심으로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 의학과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통합의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20세기 의학은 급성질환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암이 생기면 의사가 그 부분을 절제한다. 치료하는 의사, 병원, 약 중심의 의료모델이다.
그러나 21세기 의료 모델은 만성질환 모델이다. 생활 속에서 수십년동안 쌓인 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암 세포도 금세 생기는 것이 아니고 돌연변이 세포가 10여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암 덩어리가 된다.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영양소는 부족하고 칼로리는 많은 정제 가공된 음식을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 습관으로부터 생긴다. 그래서 현대 만성질환을 생활습관질병이라고도 한다. 특히 컴퓨터를 사용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은 치명적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개개인이 더 고립되어 활동이 적고 정서적 교류가 없어져 건강에 적신호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본다. 환경적으로도 여러 가지 유해물질이 많이 생겼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 병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만성질환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만성질환들은 현대의학의 접근법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새로운 치료법
—병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치료법도 기존과 달라질텐데.
“병의 원인이 종합적으로 누적되어 있기 때문에 약 하나 먹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질병에 걸려도 약 하나로 치료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급적 안걸리도록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을 것이다. 질병의 예방이다. 그리고 병의 원인이 대부분 생활습관, 삶에 있으므로 하루 하루 우리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질병 예방뿐 아니라 질병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도 답이 될 것이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환자 본인이 할 일이지, 예컨대 종양 제거 수술처럼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 환자가 스스로 하게끔 의사가 동기부여를 하고 올바른 정보를 주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 선수의 실력을 높이는데 훌륭한 코치가 필요한 것처럼 환자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생활 습관을 찾고 유지할 수 있도록 의사가 라이프 코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헬스코치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기고 있고 의사들이 이 일을 겸하기도 한다. 아는게 많아도 실천이 어렵고 습관은 특히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환자에게 건강한 생활습관을 권하려면 의사도 건강한 생활습관 경험이 있어야 할텐데.
“의사가 건강할 거라 생각하지만 수명이 짧은 직업군에 속한다. 하루 하루 아픈 환자를 대하고, 쉽지 않은 결정을 매순간 내리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환자(의사를 의미)가 어떻게 환자를 잘 치료하고 도움을 줄 수 있겠나?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려면 의사도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의사를 포함해 의료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루 하루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기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애리조나대 통합의학센터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아니라 의사가 자기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이었다. 나는 이러한 개념을 10여년 전부터 준비하고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다행히 이런 접근법을 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 교수가 이야기하는 통합의학의 개념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통합의학의 실전 치료법 가운데 하나인 푸드테라피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