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3분기 전기 요금을 동결했다. 올해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한전은 최근 국제 유가 상승으로 전기 요금 상승 요인이 발생했지만,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인상을 또 유보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제 연료 가격이 급격히 상승해 3분기 연료비 단가를 조정할 요인이 생겼지만, 코로나 장기화와 2분기 이후 높은 물가 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동결 조치가 민간 상장 회사인 한국전력 수익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21일 한전 주가는 6.88% 폭락했다. 일부 한전 소액주주는 정부와 한전에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으로 전력 생산 단가가 대폭 오르면서 한전 수익성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며 “결국 전기 요금 동결로 한전만 멍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국제 유가 급등했는데 전기 요금 또 동결
정부는 올해부터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유류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연료비의 변동을 전기 요금에 3개월 주기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연료비 연동제는 직전 3개월과 1년 평균 연료비를 비교·산출해, kWh(킬로와트시)당 ±3원 한도에서 조정하는 것이다.
3분기 연료비 조정의 근거가 되는 직전 3개월(3~5월) 연료비는 지난해 12월~올 2월 대비 유연탄은 17.6%, 벙커C유는 17.8% 올랐다. 이를 전기 요금에 반영하면 상한선인 3원을 인상해야 한다. 일반 주택이 보통 한 달 350kWh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1000원가량 오르게 된다.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전기 요금 동결이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분기에도 전기 요금을 kWh당 2.8원 인상할 요인이 생겼지만 동결했다. 당시에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3분기 전기 요금 동결도 여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필수 사용량 보장 공제’ 혜택 축소로 전국 910만 가구 전기 요금이 7월부터 2000원씩 오르는 상황에서 추가 인상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다만 “하반기에도 현재처럼 높은 연료비 수준이 유지되거나 연료비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경우 4분기에는 연료비 변동분이 조정 단가에 반영되도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전 실적 악화··· 부채 급증
연료비는 가파르게 치솟는데 전기 요금까지 묶이면서 한전의 수익성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한전 부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08조8243억원이었으나, 지난해 132조4753억원까지 늘었다. 한전은 ‘중장기 재무 전망’에서 부채가 2024년 159조4621억원까지 늘 것으로 내다봤다.
한전은 또 내년 이후 연료비 상승과 신재생에너지 의무 구입 비용, 배출권 비용 등의 증가로 이익이 줄어들어 2023년엔 4609억원, 2024년엔 1조2712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전 주가는 2016년 5월 6만3000원을 기록한 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탈원전·탈석탄에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지난해 말 연료비 연동제 도입 기대감으로 3만원대까지 올랐지만, 2분기 전기 요금이 묶이면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21일엔 전기 요금 동결 소식에 전 거래일 대비 6.88% 급락한 2만50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병천 한전소액주주행동대표는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한전의 수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기 요금을 또 동결했다”며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직무 유기와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연료비 연동제
석탄·LNG·석유 등 전력 생산에 사용되는 연료의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 분기마다 직전 3개월과 1년간 평균 연료비를 산출해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한다. 한국전력의 과도한 이익이나 손해를 막을 뿐 아니라, 연료비 급등 때 전력 수요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직전 분기 요금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까지 변동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