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서 25년째 김치찌개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모(61)씨는 13일 새벽 1시쯤 인터넷에서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탓에 전날 저녁 내내 4인용 테이블 13개가 있는 유씨 식당에 온 손님은 16명이 고작이었다. 3명의 직원을 둔 유씨가 현재 주휴수당과 식대를 합쳐 실제 지급하는 임금은 시간당 1만1000원. 대략 1인당 월급으로 250만~270만원이 나간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아 이 식당 근로자들은 평균 주 60시간을 일하고 있다. 유씨는 “내년이면 월급이 300만원 가까이 돼 3명을 모두 데리고 있는 건 불가능하다”며 “가뜩이나 저녁 장사를 못해 열불이 나는데, 꼭 지금 임금 올리는 걸 결정해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160원으로 약 5.1% 인상하기로 결정하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 5.1% 인상에 자영업자 “코로나에 또...”
올해보다 440원 오른 내년도 최저 시급 9160원(5.1% 인상)은 월급으로 환산하면 191만4440원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주휴수당을 더한 실질 최저시급은 1만1003원이다. 주휴수당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휴일에도 하루치 임금을 주는 것이다. 인상률 5.1%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이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알지만,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고,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을 낮은 임금으로 계속 끌고 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격앙된 반응이다.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44)씨는 “내년에 경기가 회복된다고 가정하고 올렸다는데,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으면 최저임금을 내려 줄 것이냐”며 “최근에도 코로나 사태가 좋아진다고 하다가, 갑자기 나빠지지 않았냐”고 했다. 자영업계에선 폐업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폐업 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점포 철거 지원 건수는 2019년 4583건에서 지난해 1만1535건으로 무려 250% 이상 증가했다.
이번 인상안에 대해 노조도 불만이다. 박희은 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위에서 퇴장하며 “최저임금 1만원 공약으로 (정부가) 그동안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희망고문을 해 왔다”며 “저임금 근로자 목소리가 여전히 외면당했다”고 했다. 민노총은 오는 11월 총파업도 예고했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 도입해야
경영계와 자영업계에선 최저임금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은 근로자의 국적이나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없이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선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화공단에서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다른 선진국 업체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이용하는데, 한국은 작업이 서툰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OECD 주요 21국 중 업종·지역·연령 등의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국가는 12국이다. 미국은 지역·연령에 따라, 일본은 지역·업종에 따라, 캐나다는 지역·업종·연령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있다. 김선애 경총 임금·인사관리 정책팀장은 “숙박음식업·도소매업의 경우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