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방산·정보통신 자회사 한화시스템은 이달 초부터 사내 무료 심리 상담을 ‘재직 기간 중 8회'에서 ‘연간 6회'까지 받을 수 있도록 늘렸다. 종전 한 명까지 지원했던 임직원 가족 상담도 가족 수 제한을 없앴다. 직원 가족이 4명이면 매년 24회까지 심리 상담 지원이 된다는 의미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난 상황에서 배우자가 육아 스트레스로 힘겨워하거나 비대면 수업을 하는 자녀가 힘들어하면 직원들이 제대로 근무할 리 없다”며 “직원과 가족의 정신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 조직 관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직원들의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 관리에 나선 기업이 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직원들이 겪는 우울증이나 불안, 번아웃 증후군이 업무 효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부 IT 기업이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정신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던 것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경영이 강조되면서 관련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하게 된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기업들, ‘코로나 블루’ 관리에 비상 걸리다
포스코는 이미 운영하던 심리 상담실 ‘마음챙김센터 휴(休)’를 올해 확장했다. 포항·광양에 1명씩 배치했던 전문 심리 상담사를 각각 2명으로 늘렸고, 직원과 임직원 가족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까지 상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작년 이곳에서 직원과 임직원 가족이 받은 상담은 2100여 건. 올해는 상반기에만 1500건을 넘겼다. 포스코 측은 “직원들이 겪을 수 있는 코로나 우울증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늘리는 곳도 많아졌다. LG화학은 올해 17국 50여 해외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 2만여 명을 대상으로 비대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24시간 진행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텍스트 상담도 가능하도록 했다. 롯데그룹도 작년 말부터 전 직원과 협력사 직원을 대상으로 무료 맞춤 심리 상담을 비대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들이 직원과 임직원 가족의 정신 건강 관리에 갈수록 신경 쓰는 것은 코로나 이후 이 사안이 조직 운영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가 덮친 지난해 정신 건강 관련 산재 신청이 급증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작년에 접수한 관련 산재 신청은 517건으로, 2019년에 비해 56.2%나 늘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치다. 2020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서 우리나라 우울증 유병율(전체에서 특정 질병을 가진 비율)도 36.8%로 1위였다.
◇해외 기업도 ‘우울증 방역’에 골머리
해외에서도 ‘코로나 블루’로 인한 정신 건강 관리는 필수 직원 복지로 자리 잡는 추세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 유데미는 작년 코로나 발생 이후 정신 건강 관리 치료를 직원 복리 후생에 추가했다. 미국 컨설팅 기업 EY도 직원과 임직원 가족을 위한 비대면 심리 상담을 연간 횟수 제한 없이 하고, 명상·요가 등 스트레스 관리 교육을 강화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 이후의 정신 건강 관리는 주요한 사회문제다. 일본의 닛산식품홀딩스는 작년 8월 ‘재택근무 우울증 예방팀’을 만들고 이틀에 한 번꼴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기준을 넘어서는 지수를 기록한 직원에겐 전담 상담사를 따로 배정한다. 일본 화장품 업체 폴라오비스홀딩스는 우울증 치료를 위한 교육 동영상을 매월 한 편씩 제작·배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