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지난 3월 이후 배럴당 70달러 선을 오르내리며 고공 행진 중이다. 22일(현지 시각)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2.3%(1.61달러) 상승한 배럴당 71.91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2.2%(1.56달러) 오른 배럴당 73.7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탈(脫)탄소 바람이 불며 석유를 덜 쓰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지만, 오히려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잇단 탈탄소 선언··· 하지만 갈 길 멀다

전 세계 산업계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에 따라 잇따라 탈탄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탄소 배출 주범으로 몰린 세계 자동차 업계의 경우, GM은 2035년, 볼보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폴크스바겐은 2030년까지 판매량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1년간 국제 유가 추이

그러나 실제 전기차 보급률을 들여다보면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는 전년 대비 41% 증가한 300만대가 팔렸다. 성장률은 높지만 지난해 전 세계에 판매된 신차 전체로 볼 땐 비율이 4.6%에 불과하다. 전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판매량 50만대를 달성했는데, 이는 950만대를 판매한 세계 1위 도요타에 비하면 5% 수준이다.

장거리 운송을 친환경차로 대체하는 것은 더 어렵다. 테슬라 등이 전기 화물 트럭을 개발 중이지만,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안으로 여겨지는 수소 트럭 역시 친환경 수소 생산이나 인프라 구축 등이 속도가 나지 않으면서 대중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탈탄소 계획을 늦추거나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30년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던 영국은 트럭의 경우엔 현실적으로 친환경차 전환이 더 어렵다며 2040년으로 금지 시점을 미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2일(현지 시각) “2030년까지 완전 전동화를 하겠다”면서도 “여건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인프라 구축, 배터리 공급, 전기차 보조금 유지나 소비자 수요 등 여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게다가 에너지 분야 자금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집중되면서 석유 개발 등 화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급감한 것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는 10년 안에 석유와 가스 생산을 40% 줄이고, 신규 국가에서 화석연료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석유 업체들의 석유 채굴 투자액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석유 채굴 투자액은 3290억달러(약 379조원)로, 지난 2014년 8070억달러(약 929조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급 부족에 고공 행진… 요동치는 유가

OPEC플러스(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는 지난 18일 8월부터 올해 말까지 매달 하루 40만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유가 상승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석유 수요 회복세에서 (코로나 델타 변이에 대한 우려로) 일부 둔화한 부분도 보였지만, 근본적인 전망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브렌트유는 올해 배럴당 70달러 중반의 높은 수준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는 22일 “OPEC플러스의 석유 증산이 계획대로 안 될 경우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델타 변이 확산에 3분기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75달러로 전망했다. 또 4분기엔 배럴당 80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골드만삭스는 “델타 변이에 대한 불확실성과 최근 수요 증가에 비해 공급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유가는 앞으로 몇 주간 계속해서 요동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