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란티스 산하 SUV 브랜드인 지프가 이달 초 공개한 신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그랜드 체로키 4xe’와 태양광발전을 활용한 전기차 충전기. 충전기는 미국 내 일조량이 큰 일부 지역에 설치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는 2024년까지 300억유로(약 40조원)를 투자해 배터리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스텔란티스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의 합작 배터리 회사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솔루션’이 내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50%로 낮춘 ‘반값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리튬·코발트 같은 배터리 원료를 대량 발주하고, 생산 라인을 증설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 고다 히로아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6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 같은 계획이 통한다면 중국 CATL이나 한국 LG에너지솔루션 같은 경쟁 배터리 업체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가 잇따라 반값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단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가격은 1kWh당 140달러(약 16만원) 선이다. 배터리 가격이 그 절반인 70~80달러 선으로 떨어지면 전기차 가격이 동급의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질 수 있고,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계산이다.

◇생산량 50GWh를 넘겨라

자동차 업계의 반값 배터리 열풍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해 9월 ‘배터리데이' 행사에서 “늦어도 2024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현재보다 56% 낮출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후 폴크스바겐이 올 3월 “2023년 반값 배터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달 초 세계 4위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 합병)도 “300억유로(약 40조원)를 쏟아부어 2024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지금보다 40%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배터리 업체들과 합작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GM·포드가 각각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과 합작 법인을 세운 것과 같은 방식이다. 폴크스바겐은 스웨덴 노스볼트·중국 궈시안, 스텔란티스는 삼성SDI와의 합작이 유력하다.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생산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연간 50GWh(기가와트시) 이상 생산하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서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고 본다. 50GWh면 400㎞ 이상 주행 가능한 전기차 70만여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이미 미국 내 7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포드·볼보는 이르면 2025년까지 50~60GWh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며, 폴크스바겐·스텔란티스·다임러는 2030년까지 200GWh 이상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물량 확대·공정 혁신·신소재 개발까지

‘반값 배터리'를 내세운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인하 압력에 기존 배터리 업체들도 원료 수급망 개선, 배터리 제조 공정 혁신 등을 통한 원가 절감에 나서고 있다. 중국 CATL은 코발트·망간보다 단가가 저렴한 인산·철 소재를 쓴 배터리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기존 3단계 배터리 제조 공정 대신 셀을 팩에 직접 넣는 셀투팩(cell to pack) 공정으로 단순화해 제조 비용은 줄이고 에너지 밀도는 높이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은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혁신해 1년에 이르던 추출 기간을 몇 주 수준으로 단축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생산 전(全) 영역에서 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6조원을 투자, 현재 123GWh 수준인 생산 물량을 2025년까지 2배(250GWh)로 늘릴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양극재·분리막 등 배터리 부품도 자체 생산하고, 광산 업체와 합작 법인을 설립해 소재를 내재화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LG·SK와 달리 아직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이 없는 삼성SDI는 미국 진출을 검토 중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 업체별 배터리 성능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며 범용화됐다”며 “이제부턴 본격적인 가격 경쟁력 싸움”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46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에서 2030년엔 3500억달러(약 403조원) 규모로 8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