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의 재활용 연료 저장시설. 재활용 연료는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페트병, 플라스틱 등을 선별한 뒤 잘게 부숴 공장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공장에서 시멘트를 만들 때 쓰는 연료의 30%가 이런 순환 자원이다. /성유진 기자

지난 12일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에 들어서니 520만㎡(157만평)에 달하는 부지의 한쪽 창고에 재활용 폐기물이 작은 모래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폐기물 처리 업체가 페트병⋅플라스틱 등을 선별한 뒤 잘게 부숴 공장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재활용 폐기물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시멘트 제조 시설(소성로)로 속속 들어갔다. 석회석과 점토, 철광석 등을 섞어 시멘트를 만들 때 최고 2000도 고열이 필요한데, 열을 내기 위한 보조 연료로 쓰는 것이었다.

뜨거운 열을 내뿜는 소성로 옆에는 폐열 발전기가 가동 중이었다. 단양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의 약 30%가 이 폐열 발전기에서 나온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기존에 쓰던 유연탄(석탄) 대신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연료로 쓰고, 이때 나오는 열로 전기까지 생산해 전기료를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굴뚝 산업이던 시멘트 업계가 최근 ‘탈(脫)석탄’을 선언하며 자원 재활용 등 친환경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시멘트 업체마다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용기 같은 폐기물을 연료로 활용하는 비율을 크게 늘리고 있다. 쓰레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멘트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폐플라스틱 활용 늘리는 시멘트 회사

쌍용C&E와 한일시멘트, 삼표시멘트는 공장이 있는 지역의 재활용 쓰레기를 거의 무상으로 처리하고 있다. 2년 전 CNN 보도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경북 의성군의 20만t 규모 ‘쓰레기 산’을 치운 것도 시멘트 회사였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업체들의 폐플라스틱 등 순환 자원 사용량은 2016년 125만t에서 지난해 172만t으로 4년 만에 37.6% 늘었다.

시멘트 업계는 앞으로 폐플라스틱·타이어 등 순환 자원 활용 외에 탄소 저감 기술 확보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삼표시멘트 모기업인 삼표그룹은 시멘트 제조·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2030년까지 35% 감축하고, 2050년엔 100% 줄이는 데 2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23일 발표했다. 쌍용C&E도 올해 초 유연탄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탈석탄 경영’을 선언했다. 연간 150만t가량 사용하던 유연탄을 지난해 100만t 규모로 줄였고, 2030년에는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요 시멘트 업체의 순환자원 활용·투자 계획

한일시멘트와 한일현대시멘트도 2025년까지 최대 2700억원을 들여 순환 자원 재활용 시설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아세아·한라시멘트는 순환자원 설비 투자 등을 통하여 2025년 까지 탄소배출량을 25% 감축하고, 성신양회도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친환경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한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유연탄 대신 순환 자원을 쓰려면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지만 연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장기적으론 이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로 골머리 앓는 지자체도 관심

시멘트 업계가 이처럼 순환 자원 활용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대표 업종이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라는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시멘트 업계의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3580만t에서 2050년 1610만t으로 55% 감축하는 목표가 포함됐다.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에 애를 먹는 전국 지자체들도 시멘트 업계의 재활용 시설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의 폐열 발전기. 단양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의 약 30%가 이 폐열 발전기에서 나온다. /한일시멘트

유럽에서도 유연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폐플라스틱이나 폐고무 등 순환 자원으로만 시멘트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독일 시멘트 업계의 순환 자원 유연탄 대체 비율은 2018년 기준 68%로 한국(23%)보다 훨씬 높다.

일부 환경 단체가 소성로에 폐기물을 사용하면 시멘트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시멘트 협회는 “소성로 최고 온도가 2000도에 달하고 내부에 뜨거운 공기가 머무는 시간도 길어 유해물질이 완전히 분해된다”고 설명한다. 이동훈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플라스틱을 매립하거나 단순 소각하는 것보다 시멘트 업계처럼 에너지화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