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석유화학 회사에서 세계 최고의 폐(廢)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 사장은 31일 경기도 김포에서 열린 ‘브랜드 뉴 데이’ 행사에서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재활용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석유화학의 원료인 석유 대신 생활 폐기물인 폐플라스틱으로 화학 제품을 만든다는 점에 빗대 “도시 유전 기업이 되겠다”고도 했다.
석유화학 회사들이 자원 재활용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쉽게 썩거나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 개발에서 한발 나아가,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사업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비롯한 재활용 사업 확대는 석유화학 기업에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진다. 탄소 중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굴뚝과 연기 이미지로 대표되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환골탈태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탄소 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만큼 이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SK지오,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역점
SK지오센트릭은 우선 2025년까지 매년 폐플라스틱 90만t을 처리할 설비를 갖춘 다음 2027년까지 이 규모를 250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은 현재 국내 사업장에서 연간 플라스틱 90만t, 해외 공장까지 합쳐 250만t을 생산하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생산 규모만큼 재활용 설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약 5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나 사장은 “폐플라스틱 문제는 이를 가장 잘 아는 화학 기업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2050년에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세계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성장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했다.
SK지오센트릭은 2011년 SK종합화학 출범 후 10년 만에 사명도 바꿨다. SK지오센트릭은 ‘지구’라는 뜻의 지오(Geo-)와 ‘중심’이라는 뜻의 센트릭(Centric)을 합친 것으로, 친환경 소재 사업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뜻을 담았다. 나 사장은 “핵심 방향은 ‘지구를 중심에 둔 친환경 혁신’”이라며 “2025년까지 친환경·재활용 영역에서 기존 비즈니스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폐대리석에서 원료 뽑고, 폐어망으로 섬유 만들고
LG화학 등 다른 화학 회사들도 자원 재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활용 대상도 페트병 같은 단순한 폐플라스틱에서 인공 대리석·그물 등으로 넓히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30일 프랑스계 자원 회수 전문 기업인 베올리아R&E와 협력해 폐대리석 재활용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인조 대리석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가루에서 원료를 추출해 IT(정보 기술) 제품용 고부가합성수지(ABS)를 생산할 계획이다. 효성티앤씨는 해양 생태계 오염의 원인으로 꼽히는 폐어망을 수거·세척·분쇄해 나일론을 만들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고객사에서 수거한 폐포장백을 원료로 재활용 포장백을 생산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올해 해당 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7월부터 월 3000t 물량에 대해 시범 적용 중”이라며 “올해 말까지 물량을 월 1만5000t까지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화솔루션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를 만드는 연구·개발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석유화학 회사들이 자원 재활용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50년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의 일환이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경우, 그만큼 탄소 배출을 줄인 것으로 간주되는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화학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대표적 탄소 배출 업종인 석유화학 입장에선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제품도 생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폐플라스틱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성에 대한 우려는 나온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용화 가능한 재활용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탄소 저감 효과를 보려면 2030년은 돼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며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세척하는 과정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