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10일째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제철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침에 반대하고 본사 직고용만 요구하면서 지난달 23일 통제센터로 들이닥쳤고, 현재까지 약 100명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 통제센터는 제철소를 종합 관리하는 관제탑과 같은 곳으로 제철소의 두뇌와 마찬가지다.

노조가 현대제철 장악한 그날 -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로비를 점거하고 있다. 이들이 통제센터가 있는 건물을 무단 점거하고 통제센터 근무자들의 출입을 막으면서, 통제센터는 일주일 넘게 정상 운용이 중단된 상태다. /독자 제공

그러나 노조가 사업장 내 중요 시설을 이처럼 불법으로 무단 점거하더라도 현행법상 공권력 개입 외에는 현대제철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제철 사태는 한국의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얼마나 노조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면서 “노조가 사업장 중요 시설을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주장하는 것은 인질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가 제철소의 두뇌 장악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조는 현재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정문과 후문에 수십 명씩 모여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통제센터 주변에도 천막과 텐트 40여 개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점거한 통제센터는 제철소 내 모든 공장의 생산을 관리할 뿐 아니라 안전·환경·에너지·물류·정비·품질·재경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가 모여 있는 곳이다. 24시간 가동되는 제철소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진다. 민노총 노조가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하면서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 500여 명은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하거나 제철소 내 다른 사무동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다.

민노총 노조의 통제센터 점거는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 점거 행위다. 그러나 이들의 불법 행위에 현대제철이 대응할 방법은 전무하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노조에 퇴거 요청을 하고, 경찰에 시설물 보호 요청을 한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경찰은 노사 간 충돌을 막기만 할 뿐 불법 점거 중인 노조원을 강제 해산하지 않고 있다. 철강업계에선 “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 영장 집행도 못하는 경찰이 현대제철에서도 민노총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노총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당진제철소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파업 중인 민노총 근로자 2600명이 맡던 업무에 나머지 직원들을 임시로 투입해 일을 처리해 왔지만 최근 제품 포장과 같은 일부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철강 제품 생산 차질과 공급 지연으로 나머지 산업 분야에도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 비정규직 노조원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도 업무 과중으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대체 근로자 투입도 못해

현대제철이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해 임시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는 없다. 현행 노조법이 대체 근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총 관계자는 “1953년 노조법 제정 당시 취약했던 노조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지금은 노조가 강경 파업을 통해 회사에 타격을 가하는 법적 장치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제철 인천·포항공장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 전원이, 당진제철소에서는 2700여 명이 자회사 직고용에 동의했다. 이들은 1일부터 자회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생산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민노총 노조는 자회사 직고용에 동의한 이 근로자들을 상대로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을 퍼부으면서 노노 갈등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번 불법 점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제철이 직접 나서서 민노총 노조와 교섭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원청업체인 현대제철이 하청업체 소속인 이 민노총 노조원들을 직접 지휘할 경우 파견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할 때는 공권력이 가차 없이 엄벌하면서 노조가 불법 점거를 하는데도 강제 해산을 하지 않는 것은 법 집행에 있어서 사용자를 차별하는 것”이라면서 “노조가 생산 시설 내에서 어떠한 점거 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