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43)씨는 아내와 함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5년 전 추석을 맞아 지인이 생산한 꿀 세트를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취미로 즐기던 축구와 캠핑 관련 용품을 하나씩 추가해 지금은 취급 품목만 50개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확산에 맞춰 판매한 마스크 주문이 몰리며 하루 1억원 매출을 기록한 날도 있었다. 덕분에 작년 연간 매출이 20억원을 웃돌았다. 쇼핑몰 규모가 커지자 장씨의 아내는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쇼핑몰 운영자로 변신했다.

그래픽=김성규

3040 대기업 직장인 사이에서 투잡(two-job) 바람이 거세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취미·지식·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만의 수입원을 만든다는 점에서, 대리운전·배달처럼 당장 부족한 급여를 벌충하기 위한 생계형 ‘부업’과는 구분된다. 이전에도 IT(정보 기술) 업체 디자이너나 개발자 등이 홈페이지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을 부가적인 일거리로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돈 쓰던 취미를 돈 버는 투잡으로

최근 유행하는 부업의 특징은 본업에서 쌓은 역량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올 초부터 온라인 포털에서 수입차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다. 업무를 통해 쌓은 지식과 동호회 활동 경험을 발판으로 온라인에 매장을 차렸다. 처음 몇 달이 지나자 월 매출은 100만원 안팎으로 올라왔다. 그는 “제품 포장과 발송은 저녁이나 주말 등 남는 시간을 활용한다”며 “작은 제품 위주라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해외구매팀장인 40대 박모씨는 잘나가는 명품 온라인 직구숍 사장님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 본업에서 터득한 영업 노하우를 활용해 쌓은 현지 거래처와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최대 강점이다. 직구숍 수입은 연봉의 1.5배에 이를 만큼 짭짤하다.

취미를 돈을 버는 투잡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드물지 않다. 중견기업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박모(41)씨는 대학 시절 PC 통신에 소설을 연재했던 경험을 살려 웹 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순수입이 월 1000만원을 넘나들자 사무실을 구하고 업로드 담당 직원까지 채용했다. 대기업 패션 계열사에 다니는 이모(32) 대리는 와인에 대한 관심이 많던 대학 동기 2명과 와인 매장을 열었다. 각자 전문 분야에 맞춰 소셜미디어 운영, 와인 조달, 회계·데이터 분석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그는 “3명이 분업하니까 매장 운영은 잠시만 짬을 내면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번역·과외 등 외국어 실력을 이용한 사이드 잡도 여전히 인기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중국에서 마친 고모(33)씨는 알음알음 들어오는 중국어 과외와 번역 일로 상반기에만 600만원 넘게 벌었다. 5년 차 연봉 5000만원의 10분의 1이 넘는 금액이다.

◇40대 명퇴 시대…재택근무 확대도 이유

대기업 직원들이 부업에 나서는 것은 예전과 같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시대적 변화가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연봉이 과거만큼 가파르게 오르지 않고, 명퇴 등을 통한 수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대기업 정규직도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대기업 임금 인상률은 2~3%에 그쳤다. 한 40대 대기업 직원은 “야근해서 연봉 1000만원을 더 버는 것보다 번역으로 한 달에 100만원씩 버는 게 더 쉽다”고 말했다. 사이드 잡 준비 플랫폼으로 알려진 ‘남의집’ 김성용 대표는 “과거 부모 세대는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했지만, 지금 3040은 그런 길이 막혔다”며 “기성세대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3040은 사이드 잡에 들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투잡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회사의 시야에서 벗어난 직장인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이드 잡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투잡을 했다는 직장인 비율은 20%를 웃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이 간편하게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난 것도 사이드 잡 열풍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