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꽁티브이’는 홍보팀 8년 차 한아라(30)·7년 차 공지현(29)씨가 만든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는 출연시키지 않고, 직원들의 출근 옷차림과 외근·회의 같은 평범한 일상을 촬영해 올리는데도 인기다. ‘패션회사 직원들의 출근룩’ 영상은 조회 수 77만건을 기록했다. 기획·제작은 MZ세대인 두 사람이 전담한다. 임원이나 팀장 같은 상급자에게 사전 보고하는 일도 없고, 별다른 지시도 안 받는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고 제품을 홍보하는 주요 업무를 젊은 대리급 사원 둘에게 전적으로 맡겼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주요 업무 차지한 MZ세대

1981년부터 2010년 사이에 출생한 MZ세대 직원들이 사내 주요 프로젝트를 맡는 일이 늘고 있다. 특히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른 유통업계에선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단순히 ‘참고’하던 것을 넘어서, 이들에게 실무 결정권을 넘기고 있다.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MZ세대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확산 등 유통산업의 판도를 뒤흔들면서, 이들 취향과 감성을 가장 잘 아는 또래 세대 실무 직원의 의견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MZ세대, 프로젝트 책임자부터 면접관까지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편의점 형태의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유통 스타트업 ‘나이스웨더’에 30억원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 현대백화점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첫 사례다. 그 결정을 내린 부서는 ‘미래사업팀’. 신규 투자처 발굴이라는 중책을 맡은 조직이지만, 구성원 10명 중 신영섭(45) 팀장을 제외한 9명이 20~30대다. 평균 나이는 29.8세에 불과하다.

GS리테일도 최근 20~30대 직원 20명이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마케팅까지 모두 진행하는 전담기획팀을 만들었다. 그동안은 협력사가 상품을 제안하거나 선임급에서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엔 철저하게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제품을 직접 발굴하고 협업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패션 업체 LF도 최근 ‘던스트’ ‘앳코너’ 같은 신규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20~30대 직원에게 시장 조사·기획·론칭까지 전담시켰다.

인사 같은 관리 업무에서도 MZ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이달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20~30대 실무 직원을 배석시키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팀장·과장급 정도까지만 면접관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인재를 보는 시각에서도 간부급과 MZ세대 간에 차이가 있다”며 “채용 과정에도 이 세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척’하면 ‘착’… 불필요한 보고는 건너뛴다

MZ세대로 구성된 조직은 업무 추진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불필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적고 의사 결정이 빠르다. GS리테일 측은 “MZ세대로 구성된 팀이 최근 젊은 층에서 인기 많은 한 카페와 협업해 신제품을 출시할 때 그 카페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고 윗선에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며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고 말했다.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어, 불필요한 보고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MZ세대로 구성된 미래사업팀의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본떠 회사 전체에 간편 보고 시스템을 도입했다. 팀원들이 진행 상황과 일정을 공유할 때 업무 협업 프로그램을 사용해 회의를 줄이는 등 업무 효율을 크게 높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실험이 모두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MZ세대에게 주요 업무를 맡기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과도기를 겪는 업체도 있다. 대기업 패션 회사의 한 30대 대리는 “회사가 ‘MZ세대 팀’을 꾸리면서 업무만 더 늘어나거나, 실제로는 임원들이 하나하나 간섭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MZ세대 중에선 처음엔 의욕적으로 일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시큰둥해져서 아무런 성과를 못 내는 사람도 있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