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2시 30분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 앞 잔디밭엔 응급 구조 키트 3개를 실은 산업용 드론 1대가 착지해 있었다. 등번호 ‘101번’ 평촌공고 2학년 송인우(18)군이 “드론 정보 수신 상태 양호. 이상 무!”라고 외쳤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산업용 드론 제어’ 종목 경기 현장이었다.
송군이 양손에 쥔 조종키를 작동시키자 드론이 떠올랐다. 2인 1조로 한 팀을 이룬 동료 학생이 PC 화면을 보며 “높이 1.54m! 현재 3m, 5m”라며 실시간 고도를 외쳤다. 두 학생이 자신들이 조립한 드론을 조종하는 모습을 4명의 심사위원이 지켜보며 평가했다. 드론은 5분간 잔디 광장 곳곳에 설치된 폭 20㎝짜리 매트 3개에 키트를 차례로 낙하시키고 착륙했다.
송군은 “오늘을 위해 7개월간 주말도 없이 매일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연습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드론을 접했다는 그의 꿈은 드론 제작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다. 그는 “시스템에 드론을 연결하는 시간이 5분 정도 지연돼 감점을 받았다”며 “무척 아쉽다”고 했다.
미래 기술 장인을 꿈꾸는 기능인(技能人)들이 실력을 겨루는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지난 4일 개막해 11일까지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 대표 최고령 이필늠(71·한복)씨부터 충북 대표 최연소 정서빈(15·화훼장식)군까지 17개 시·도 대표 1828명이 참가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1966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이 대회는 기술 분야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로, 코로나가 덮친 작년과 올해도 대회를 거르지 않았다. 올해는 용접·가전·목공부터 최신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까지 총 53개 종목에서 경쟁이 펼쳐치고 있다.
◇산업계 흐름 따라 종목도 진화
올해 56회째인 이 대회 종목은 산업 흐름을 반영해 진화하고 있다. 1970년대 인기였던 제화·시계 수리 종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대엔 로봇을 조립하고 원격 제어하는 ‘모바일 로보틱스’, ‘산업용 로봇’ 같은 종목이 신설됐다.
올해는 산업용 드론 제어, 사이버 보안·클라우드 컴퓨팅 종목이 신설됐다. 새 종목이 생긴 건 4년 만으로, 두 종목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도 아직 채택 안 된 첨단 종목이다. 종목은 같더라도 과제가 달라지기도 한다. 올해 지원자 150명이 몰린 인기 종목 ‘게임 개발’은 과거 PC용 게임 개발 위주였지만 최근엔 AR·VR(증강·가상현실) 게임 기술을 구현하는 과제가 추가됐다. 류병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기술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기술 숙련 인력을 키우기 위해 종목을 추가했다”며 “드론과 사이버 보안은 국제대회에 신설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수 10명 중 7명이 ‘산업 꿈나무’ 학생
대회 참가자 10명당 7명은 마이스터고 같은 특성화고에 다니는 ‘산업 꿈나무’ 학생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4박 5일간 숙식하면서 매일 경기장에 나와 과제를 수행하고 평가를 받는다.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삼성전자 입사 전형에서 우대를 받고, 종목별 상위 득점자에겐 내년 중국 상하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도 주어진다. 김흥식 한국산업인력공단 기능경기부장은 “대(代)를 이어 같은 기능 분야에 종사하는 기술인에겐 올해부터 ‘숙련기술명문가’ 감사패도 수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가자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누구나 신청 가능한 지방대회 참가자는 2010년 9800여 명 이후 매년 줄어 올해 5300여 명을 기록했다. 참가 인원이 없어 종목이 아예 폐지되기도 한다. 2023년엔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組積)과 미장(美匠) 종목이 사라진다. 용접·배관 같은 풀뿌리 기술도 ‘3D 업종’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 우승을 독점하던 시대도 옛말이 됐다. 이명흔 한국산업인력공단 원장은 “다양한 산업군의 전문 기술인을 우대하는 풍토가 살아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