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주가가 12일 줄줄이 폭락했다. 삼성 일가(一家)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전자·SDS·생명의 보유 지분 일부를 처분하겠다고 밝히자, 그 충격파가 국내 주식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특히 지분 매각을 밝힌 3개 회사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해, 이날 하루만 시가총액 16조2000억원이 증발했다. 삼성그룹 전체 시가총액도 18조7000억원 감소했다. 국내 증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 주식들이 대거 미끄러지자, 코스피 역시 1.35%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 추이 및 삼성일가 소유 삼성그룹 주요 주식

◇삼성전자 -3.5%, 삼성SDS -6.54%, 삼성생명 -3.36%…하루 새 16조 증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주식시장 마감 후 전자공시에서 삼성전자 지분 0.33%를 처분하는 계약을 KB국민은행과 맺었다고 밝혔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약 1조4000억원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SDS 주식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도 삼성SDS와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팔겠다고 밝혔다.<본지 9일자 A17면>

12일 주식시장이 열리자, 삼성전자 주가는 직전 거래일보다 3.5% 떨어진 6만9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가가 7만원 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3일 이후 10개월 만이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전망과 원자재 공급 불안에 삼성 일가의 보유 주식 처분 소식까지 겹치면서 상승 동력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은 “3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73조원)을 달성했다는데 왜 주가가 내리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1월 9만원을 돌파하며 ‘10만 전자’ 기대감에 부풀었던 삼성전자 주가는 6만대까지 미끄러졌다.

다른 삼성 계열사 주가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보유 지분 (3.9%) 중 각각 절반(1.95%)을 매각한 삼성SDS는 6.54% 내린 15만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인 삼성생명은 3.36% 떨어진 6만9100원, 삼성그룹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도 2.87% 하락한 11만8500원을 기록했다.

◇앞으로 9조원 이상의 상속세 더 내야… 계열사 지분 추가 매각 이뤄질 듯

문제는 앞으로도 삼성 일가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주식을 내다 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 일가는 지난 4월 말 대출 등을 통해 약 2조원의 상속세를 납부한 데 이어, 앞으로 5년간 매년 2조원대의 상속세를 계속 내야 한다. 지난 8일 밝힌 주식 매각 규모는 약 2조원으로, 전체 11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계열사들의 지분 매각은 추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하단에 있는 비주력계열사의 지분은 오너 일가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대거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재계에서는 이부진·이서현 자매가 삼성SDS의 나머지 지분도 적절한 시점에 모두 매각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왔다. 이 부회장도 지금까지는 기존 삼성전자에서 받은 배당금과 대출 등으로 상속세를 납부했지만, 앞으로는 일부 지분 매각을 단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반면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에 대해서는 삼성 일가 누구도 매각 계약을 맺지 않았다. 홍 전 관장도 본인의 삼성물산 지분 대신 배당이 많은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팔았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인 삼성생명에 대해서는 이부진 사장은 지분 매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서현 이사장은 지분 절반을 매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실질 세율이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한 삼성 일가의 주식 매각은 예상된 수순이었다”며 “그 피해를 수백만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합쳐도 5%대에 불과한데,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더 낮춰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중소·중견기업은 오죽하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