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왼쪽)이 지난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지금 주장하시는 내용이 공소장 어디에 나와있습니까?” “사실관계가 틀립니다”. 지난 15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선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발언입니다. 질의에 나선 국회의원이 채 사장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핵심 고리로 지목하자 그는 오히려 “공소장 읽어보셨습니까”라며 받아쳤습니다. 마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지 마라”는 투였습니다. 해당 의원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라고 반박하자 “언론 보도가 맞는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라며 오히려 훈계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채 사장의 태도는 관련 내용을 잘 모르는 시청자가 보면 질의한 의원이 채 사장을 향해 억지를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당했습니다. 하지만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이미 감사원 감사에서 절차상 큰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났고, 국민의힘 고발로 수사한 검찰도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던 채 사장을 비롯해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채 사장이 그토록 강조한 공소장은 현재 비공개 상태입니다. 이날 국감에 참여한 복수의 국회의원들도 해당 공소장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주요 사건의 공소장을 국회를 통해 공개해왔지만 현 정부가 2019년 말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만들면서 특히 민감한 사건의 공소장을 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현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채 사장이 규정 뒤에 숨어서 당당했던 셈입니다.

옛 동력자원부 출신인 채 사장은 산업부에서 에너지산업정책관, 에너지자원실장 등 에너지 분야를 두루 거치고 청와대 비서관으로 옮겼습니다. 월성 1호기 실무를 책임졌던 이른바 산업부 3인방의 상관이자 선배입니다. 이들 중 국장과 서기관은 구속 기소되며 고초를 겪었지만, 채 사장은 오히려 가스공사 사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채 사장이 고초를 겪은 후배, 부하들에게도 이날처럼 당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