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기후변화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첫 국가 정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소형 모듈 원전(SMR)’을 미래 에너지 기술의 핵심으로 꼽았다. 전력 부족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맞은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잇달아 원전(原電) 확대로 방향을 트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SMR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8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원전의 역할을 축소했지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 SMR 등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원전을 운영·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21일 국회에 출석해 “원전 없이 탄소 중립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 ODNI, “SMR은 미래 에너지 기술의 총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기후 위기를 미국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의 중심에 두겠다”면서 국가정보국장에게 기후변화가 국가안보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ODNI는 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해 21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그래픽=송윤혜

ODNI는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대한 위험을 점점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국, 유럽연합, 일본, 러시아, 미국의 기업과 정부들은 청정 수소,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 SMR처럼 무탄소 또는 저탄소 선택지를 추가해 줄 수 있는 신흥 에너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활동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ODNI는 특히 SMR에 대해 “재래식 원전보다 건설하기 저렴하고 쉽다”며 “외딴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ODNI는 또 “일부 국가들은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안전 우려와 높은 비용 때문에 축소하려고 한다”며 “SMR이 (원전의) 새로운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SMR은 최근 들어 전 세계 주요국들이 일제히 뛰어드는 ‘블루오션’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발표한 ‘프랑스 2030′에서 원전과 수소 발전을 에너지 분야의 중점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SMR 개발을 언급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SMR을 비롯한 원전 산업에 다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원 사장 “원자력 탄소 중립에 도움”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SMR 등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지난 2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출석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 재개돼 (원전 생태계에) 숨통을 틔웠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신규 원전 건설에는 정부의 방침과는 정반대로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이다.

신한울 3·4호기는 현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을 밀어붙이며 2017년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중단 전까지 총 7900억원을 투입해 부지 조성까지 끝냈지만 4년 동안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날 “현재까지 나와있는 기술로 보면 2050년 ‘넷제로(net zero·탄소 중립)’로 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도 말했다. 그는 “(탄소 중립을 위해) 확정되지 않은 기술보다 SMR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을 (정부에) 제시했다”며 “원자력은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원자력만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는 없겠지만, 원자력 없이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며 “기존 대형 원전의 운영 허가 연장, 신규 원전 건설과 함께 건설 측면에서 제약이 적은 SMR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