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경남 통영의 한 가두리 양식장. 어민 이호준씨가 냉동 정어리 토막을 쏟아붓자 어른 허벅지 굵기 방어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떼로 몰려들었다. 이 양식장은 현재 방어 8만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3~4월쯤 1㎏ 남짓한 새끼를 인근 바다에서 잡아와, 초겨울까지 양식장에서 10㎏급으로 키워내 시장에 내다 판다. 하지만 이씨는 “해마다 20만 마리가 넘는 방어를 양식했는데 올해는 그 절반도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바다 수온이 높아 새끼 방어, 즉 치어(稚魚) 어획량이 예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 탓이다. 이씨는 “사료용 냉동 정어리 값은 30%나 올랐는데 내다 팔 생선은 모자라 이대로 가다간 사료값도 못 건질 지경”이라고 했다.
겨울 방어철이 다가오는데 공급이 급감하면서 방어 가격은 급격히 뛰고 있다. 작년 이맘때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1만6000원쯤 했던 대방어 1kg 가격은 올해 2만1000원으로 올랐다. 수요가 본격적으로 몰리는 11월 초가 되면 2만5000원까지 뛸 전망이다.
올해 해수온 상승 여파로 다른 생선들도 어획·양식량이 줄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도매가격 통계(28일 기준)에 따르면, 이달 광어(활어)의 1kg당 평균 가격은 2만1099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3% 올랐다. 우럭도 1kg당 1만4995원으로 작년보다 29.1% 뛰었다. 반면 시장에 나온 물량은 광어가 20.6%, 우럭은 61.4%나 줄었다.
◇해수온 오르자 생선 사라진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올해 7월 동해 수온은 22.2도였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평균인 19.5도보다 2.7도가 높았다. 지난 40년 중 가장 높은 온도다. 동해 수온은 작년 9월 이후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 계속 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한 것이다. 바닷물이 더워지자 강원도 동해와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 주로 잡히던 방어도 해당 수역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서식지가 바뀐 것이다.
우리 연근해 한류성(寒流性) 어종의 어획량 자체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대표 생선인 명태는 1970년대 연평균 2만2400t씩 잡혔지만 2010년대에는 연평균 2.5t으로 사실상 씨가 말랐다. 정부는 2019년부터 명태를 포획·유통·판매 금지 품목에 올린 상태다. 2010년대 연평균 1246t씩 잡히던 임연수어도 작년 어획량이 629t으로 줄어들었다.
◇자영업자 시름, 마트는 물량 확보 전쟁
바닷물이 더워지면 양식업도 치명타를 입는다. 어린 생선을 잡아 키우려고 해도 환경 변화에 적응을 못 한 물고기 폐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민 이씨는 “보통 30% 수준이던 방어 폐사율이 올해 50%까지 올라갔다”면서 “높아진 바다 수온에 적응하지 못한 물고기들은 양식장에서도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생선 공급이 급감하면서 전국의 횟집과 식당들은 치솟는 원가 부담에 애가 탄다. 서울 마포구에서 횟집을 하는 최모(36) 씨는 “회덮밥이나 생선회 세트를 주로 파는데 생선 원가가 전부 2배 이상 올랐다”며 “요즘은 배달 장사가 대부분인데 가격을 올리면 시켜 먹는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강남구 논현동 횟집 주인 김모(47)씨도 “원가가 크게 오른 생선들은 예약 손님만 따로 받아서 영업하고 있다”고 했다.
방어 수급난이 심해지자, 대형마트들은 작년보다 한 달여를 앞당겨 9월 중순부터 물량 확보 경쟁에 나섰다. 김택연 롯데마트 수산 바이어는 “지난 9월부터 시장에 나오는 족족 방어를 확보해 행사를 할 수 있는 물량 2.5t을 겨우 확보했다”며 “광어·우럭 값이 너무 오른 만큼 방어라도 가격이 더 뛰기 전에 확보하려고 동해안과 제주도뿐만 아니라 서울·인천 도매시장까지 돌며 물량을 긁어모았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이렇게 확보한 방어를 지난 21~27일 할인행사를 통해 판매하기도 했으며, 곧 대규모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방어의 확보부터 쉽지 않은 올해 환경에서 우리는 판매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소비자들께 보여드리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발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