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감산할 때 생산량 늘린 테슬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놀라운 주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10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9일 1114달러로 마감, 1100달러 선마저 뚫었다. 지난 3분기 최악의 글로벌 반도체 대란 속에서 되레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덕분이었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줄줄이 대규모 감산에 돌입했을 때, 테슬라는 오히려 생산량을 73%나 늘리며 역대 최대(24만대)를 기록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이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하는 테슬라 특유의 벤처 정신이 결실을 냈다고 진단한다. 자동차 전문가인 박정규 한양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는 “테슬라 개발자들은 반도체 부족 사태가 터지자 수급이 가능한 반도체에 맞춰 밤낮없이 소프트웨어를 새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변형 19개 새로 만들어

테슬라는 실적 보고서에서 반도체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밝혔다. ‘엔지니어들이 컨트롤러(반도체 제어 소프트웨어)마다 19개의 변형 버전을 새롭게 디자인·개발하느라 ‘하드워킹(hard-working)’했다’는 내용이었다. 통상 자동차 업체들은 반도체 1개를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1개만 설계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반도체 1개당 소프트웨어를 19가지 버전으로 변형시켰다는 얘기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A반도체가 부족할 때 B반도체를 구매하고 B반도체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짰다는 뜻”이라며 “개발자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 테슬라 직원은 “반도체 대란 탓에 요즘 거의 쉬지 못한다”며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집에 와서도 컴퓨터를 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급성장한 지난 몇 년간 번아웃된(지친) 직원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회사가 잘되면 스톡옵션 가치도 오르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크기 때문에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2018년에도 ‘생산 지옥’이라 불리는 위기를 겪었다. 자동화 조립 라인에서 불량과 공정 오류가 잇따르며 모델3 양산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테슬라는 당시 거대한 텐트 공장을 만들고 직원 400여 명을 투입해 수(手)작업으로 모델3를 제조했다. 일론 머스크 CEO는 당시 “테슬라의 모든 사람이 주당 100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일본 화이트칼라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 안 받아

테슬라뿐 아니라 애플·구글 등 미국 대다수 빅테크 기업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업계 특성상, 일이 많을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쉬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예컨대 애플은 아이폰 개발팀을 격년 주기 2개로 돌리면서, 제품을 한창 개발하는 1년 반은 강도 높게, 시제품을 테스트하는 6개월은 여유를 두고 근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 캘리포니아주도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최대 근로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은 찾기 힘들다. 특히 미국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사무직 면제) 제도를 통해 연봉 10만7000달러(약 1억2500만원) 이상 직원들은 이런 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일본 역시 연수입 1075만엔(약 1억1000만원) 이상인 특정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로 두는 ‘고도 프로페셔널제’를 2019년 4월부터 도입했다. 독일 대다수 기업들은 연간 근로시간만 정해 놓고 필요할 때 초과 근무한 시간을 저축해뒀다가 나중에 휴식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도 신제품 개발·금융투자·정보처리 설계 등의 업종은 주 52시간이나 연간 근무 제한 없이 근무시간·방법을 재량껏 정하는 ‘재량근로제’가 있다. 하지만 노사 합의가 필요해 실제 도입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강성 노조가 있는 현대차는 연구개발직도 주 52시간제를 적용받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금은 코로나와 공급망 붕괴 등 전 세계 경제에 예기치 못한 비상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시대”라며 “업종의 특성, 경기 순환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