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전력 산하 한 발전 공기업은 요소수 납품 업체에서 계약을 해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중국발(發) 요소수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급등해 도저히 납품 단가를 맞출 수 없게 되자, 계약 해지를 요청한 것이다. 석탄·LNG(액화천연가스)·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일부 화력발전에는 오염 물질 저감을 위해 요소수를 사용한다. 현재 전체 화력발전기 185기(발전 공기업 기준) 가운데 15% 안팎에서 요소수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발전소들은 요소수를 공급받지 못하면 가동을 멈춰야 하지만, 요소수 재고량은 한 달 치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화력발전소 관계자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요소수 부족으로 발전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요소수 물량 자체가 없으니, 납품가를 올려주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겨울철 앞두고 화력발전 중단 위기
화력발전소들은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을 줄이려 산업용 요소수를 사용한다. 산업용 요소수는 차량용보다 가격이 싸고 조달이 쉬워 발전소들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 한 발전 공기업 관계자는 “현재 재고량은 열흘 치 정도인데, 언제 공급이 끊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전사들은 요소수 수급난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해 암모니아수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설비 전환에 최소 수개월이 걸려 당장 이번 겨울에는 적용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질소산화물을 그대로 배출하면서 발전을 해야 하지만, 현재 규정으로는 과징금 부과와 조업 정지 행정처분을 받게 돼 있다. 한 발전 회사 관계자는 “정부가 행정처분을 면제해 준다 하더라도 주변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요소수 없이 가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겨울철 난방용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화력발전의 10~15%가 멈춰 서면 전력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전력 수요가 피크(최고점)에 이르는 여름이나 겨울엔 전력 공급이 쉬운 화력발전 가동률이 높아진다. 지난 7월 화력발전 가동률은 90%를 웃돌았다. 또 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겨울은 여름과 비교해 태양광 발전 효율도 떨어져 화력발전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화력발전 가동이 멈추면 전력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용 요소수도 비상
문재인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요소수 품귀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해외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민은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말아 달라”고 했다. 정부는 요소 확보를 위해 해외 영업망이 많은 삼성물산· 포스코인터내셔널 같은 기업들에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요소수 공급난은 차량용에서 산업용으로 확산하고 있다. 산업용 요소수는 화력발전소와 제철소·화학 공장 같은 곳에서 주로 쓰이는데, 차량용보다 순도가 낮다. 산업용 요소수에 들어가는 요소도 약 97%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정부는 물류 대란을 막으려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산업용 요소수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 화학 업체 임원은 “대부분 업체 재고가 한 달 치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산업용 요소수도 부족하기는 차량용과 마찬가지”라며 “산업용 요소수는 최악의 경우 오염 물질을 배출하면서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을 두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는 “산업용과 차량용은 요소 농도만 차이 날 뿐”이라며 “이미 수입한 산업용 요소를 차량용 요소수 생산에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반면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경유 차량에 부착되는 오염물질저감장치(SCR)는 워낙 민감해 순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고장 나기 쉽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이 한국 측과 가계약했지만 통관 절차를 밟지 않는 요소는 약 1만8000t으로 우리나라가 약 80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중국 정부는 요소 수출 통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문의에 “중국은 한국 측 (요소) 수요를 중시하며 해결을 위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