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가 금(金)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전방위적인 중국산 원료 수급난으로 인해 골판지 생산에 필수적인 원료를 구하는 게 어려워졌고, 코로나 이후 물동량 증가로 폐지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골판지 생산 원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는 요소수 부족으로 골판지 원료를 운송하기 위한 트럭까지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운송비도 크게 올랐다. 골판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허가하면서 조만간 급한 불을 끌 수 있겠지만 나머지 원료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골판지는 택배뿐 아니라 기업들이 생산하는 각종 상품의 필수 포장재이기 때문에 골판지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각종 공산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에 있는 한 골판지 상자 제조 공장에서 근로자가 박스를 만들고 있다. 최근 골판지 원료 값이 크게 오르고 폐지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공산품 포장에 사용되는 골판지 가격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중국산 원료 수급 불안

골판지는 폐지에 펄프를 섞어 원지(原紙)로 만든 뒤 이 원지를 여러 겹으로 접착해 만든다. 골판지를 규격에 맞게 재단하면 골판지 상자가 된다. 골판지 제조 과정에서는 원지를 여러 겹으로 접착할 때 필요한 가성소다·붕사와 정교한 인쇄물을 골판지 상자에 붙일 때 쓰는 포리졸과 같은 원료가 필요한데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중국산 원료를 수입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발 소재 수급난으로 인해 골판지 원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를 들어 가성소다는 플라스틱(PVC)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데, 중국의 전력난으로 PVC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가성소다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동북아 지역 가성소다 가격은 지난 1월 t당 208달러에서 이달에는 865달러로 올랐다. 골판지 업체 관계자는 “이들 원료의 경우 재고가 1~2개월치 정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요소수 대란으로 인해 골판지 생산의 기본 원료인 폐지 수거도 차질을 빚고 있다. 폐지 수거 차량이 대부분 경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요소수 부족으로 트럭 운행이 줄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요소가 들어온 뒤 공장에서 생산된 요소수가 주유소까지 운송되기 전까지는 트럭 부족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국내에서 골판지를 만드는 업체는 2500여 개이고, 골판지와 골판지 상자를 모두 만드는 업체는 90여 개인데 원료나 폐지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공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폐지 가격도 치솟아

지난달 말 골판지 상자 제조기업들은 식음료·택배·운송 기업 1000여 곳에 골판지 상자 가격 10% 인상안을 제시했다. 골판지 생산 원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에 인상분을 골판지 상자 판매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골판지의 원료인 국산 폐지 가격은 지난해 2월 t당 90달러에서 지난 8월 233달러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이후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의 7.3%를 차지하는 대양제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골판지 원지 공급량이 줄어든 것도 골판지 가격 인상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골판지 원지는 지난해 2월 t당 45만원에서 지난 8월 65만원으로 올랐다.

골판지 가격 인상은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골판지는 화장품·식품·가전제품·기계장비·택배를 포함해 사실상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대부분의 제품에 필수 포장재로 사용되고 있다. 골판지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사용되는 골판지 사용량은 59억㎡에 달한다. 가로·세로 길이가 1m짜리인 골판지 원지 59억장이 쓰이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골판지를 대체할 만한 포장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골판지 가격이 급등하면 각종 공산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요소수뿐 아니라 핵심 화학 원료를 전략 물자처럼 리스트를 만들어서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