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1 빛가람국제전력기술엑스포(빅스포)' 개막식에서 한국전력 정승일 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앞장서온 에너지 공기업의 수장들이 최근 연이어 원전 건설 가능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인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10일 광주에서 열린 ‘빛가람 국제 전력 기술 엑스포’ 개막식 후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원전이 24기이고 2030년에도 24%의 발전량 비율을 가져가는데, 만약 더 늘려야겠다는 게 국민 대다수 의견이라면 정부 정책이 유지가 되겠느냐”며 “저희는 현재 원전이 적정하다고 보고 있지만, 더 많은 원전이 필요하다는 국민 공감대가 있다면 (원전 확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또 “국내에서도 특정 전원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탄소 중립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했다. 정 사장의 이날 발언은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 최대 71%, 원전 비율 6~7%’라는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비현실적이라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앞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정재훈 사장도 지난달 21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원자력은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된다”며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 재개돼 (원전 생태계에) 숨통을 틔웠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한수원은 지난 8월 탄소중립위원회에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비록 ‘국민 공감대’ 같은 전제 조건을 붙이고 있지만, 에너지 공기업 수장들도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무리라는 걸 인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전력 정승일 사장은 10일 기자 간담회에서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과학적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 사장은 탄소 중립을 위한 원전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원전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 다르다”며 “폐기물, 입지, 송·변전 시설 건설 문제 등과 관련해 원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 정쟁이 아니라 논리적·과학적·이성적으로 충분히 (논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4기의 원전, 59기의 석탄 발전, 93기의 가스 복합 발전소가 가동 중”이라며 “이런 조건에서 2030년, 2050년에 온실가스를 감축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신재생에너지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그 과제를 해결하는 나라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 레이스에서 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원전 관련 투자에 대해서도 “소형 모듈 원전(SMR)에 5000억원 이상 기술 개발 투자를 상정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혁신적 새 원전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는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제 전력 기술 엑스포 기조연설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원전 없는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며 “안전하고 효율 높은 소형 모듈 원전(SMR)에 특화돼 있는 우리의 강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력은 이날 내년 1분기 전기 요금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정 사장은 “작년부터 현재까지 석탄 가격 상승률은 300%가 넘고, LNG 가격 변동 폭은 사상 최대”라며 “적정 원가 보상이라는 공공 요금 산정 원칙이 있는 만큼, 연료비 인상에 따른 (전기 요금) 조정 요인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와 조정 관련 협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경휴 한전 요금기획처장도 “(연료 값이) 내년까지도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원가 절감 노력을 하겠지만, 오른 연료비에 대해 (전기 요금) 정상화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 2~3분기 국제 유가와 석탄·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전기 요금을 동결했다가 4분기 kWh당 3원 인상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상회하는 등 연료비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어 내년에도 전기 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