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당동 다산어린이공원. 라벨을 벗긴 생수 페트병과 빈 음료수 캔을 가져온 주민들이 자판기처럼 생긴 파란색 기계 투입구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기계 안을 들여다보니 압착된 페트병과 캔은 자동 분리돼 별도의 수거함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빈 페트병을 모아 온 김모(63)씨는 “쓰레기 하나당 10원의 포인트가 적립되는데, 포인트 2000원을 모으면 현금으로 계좌 이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신당동 다산어린이공원에 설치된 재활용 로봇 ‘네프론’을 한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이용자는 쓰레기 하나당 10원의 포인트를 적립해 현금화할 수 있다. /이기우 기자

이 기계는 자원 재활용 스타트업 수퍼빈이 내놓은 재활용 로봇 ‘네프론’이다. 재활용 쓰레기가 들어오면 내장된 카메라가 사진을 찍고, 사진 판독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물체의 크기와 생김새, 겉면에 인쇄된 재활용 마크를 종합 분석해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별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AI가 투입되는 물체에 대한 정보를 계속 학습하면서 판별의 정확도가 높아진다”며 “재활용 마크가 없어 처음엔 쓰레기로 분류하던 민무늬 캔도 나중엔 재활용 가능으로 분류하면서 정확도가 98%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재 네프론은 전국에 265대가 설치돼 있다. 이렇게 모인 쓰레기를 재활용센터에 판매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이를 직접 재가공해 화학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흔히 고물상·폐지 수거 업체로 불리는 업체들이 일일이 손으로 하던 폐자원 수거에 AI·이미지 센서 같은 첨단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폐자원 재활용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이런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직접 재활용 제품 생산을 늘리면서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하는 재활용 업체

재활용 스타트업 이노버스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전문적으로 수거한다. 이 회사가 개발한 로봇 ‘쓰샘’은 음식·종이가 뒤섞여 들어와도 AI를 활용해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컵만 정확히 분리해 낸다. 이 회사는 “쓰레기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만 손으로 직접 분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플라스틱 컵을 재질에 따라 더 정확히 분류하는 프로그램까지 개발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리코’는 각종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음식 쓰레기를 수거해 퇴비로 재활용한다. 기존에는 음식 쓰레기 배출량을 부피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많고 폐기물 수거 용기도 정량화되지 않았다. 리코는 5L 단위 눈금이 매겨진 폐기물 수거 용기를 자체 제작해 기업들에 배포하고 ‘업박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 업장의 음식 쓰레기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대기업들도 투자… 신제품 생산에도 공들여

대기업들은 이런 스타트업들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자체 육성 프로그램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폐자원 수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폐자원 수거 사업에 직접 뛰어들게 되면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회사인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수퍼빈에 55억원을 투자해 5% 지분을 확보했다. SK지오센트릭 측은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원료로 재활용하는 ‘도시유전’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수퍼빈에 9억원을 지원하고, 롯데마트와 세븐일레븐 매장에 재활용 로봇 네프론 50대를 배치했다. 리코는 삼성웰스토리·아워홈·스타벅스 같은 대형 업체를 고객사로 유치한 데 이어 현재까지 총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대기업들은 이렇게 수거한 폐기물을 원료로 하는 친환경 제품 생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자체 자원 순환 프로그램 ‘프로젝트 루프’를 통해 생산한 친환경 운동화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신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LG화학은 지난 7월 친환경 브랜드 ‘렛제로’를 출범시키고, 폐식용유·팜부산물을 재활용해 만든 합성수지를 양산해 8월 수출을 개시했다. 이 제품은 LG화학의 요르단 고객사에 납품돼 유아 기저귀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효성은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한 친환경 섬유 ‘리젠’을 생산해 노스페이스·내셔널지오그래픽에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