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받아보면 ‘1년 넘게 일해본 경험 전혀 없음’ ‘장거리 출퇴근 시에는 어지럼증을 느낌’이라고 쓴 경우도 있어요. 붙으려고 낸 게 아니라 떨어지려고 낸 거예요.”
서울 논현동에서 피부과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장모(45)씨는 지난 한 달 반가량 새 간호조무사를 채용하기 위해 여기저기 구직 공고를 냈으나 아직도 사람을 못 뽑았다고 했다. 구인 업체를 통해 이력서 20여 건을 넘겨받고 연락해 보면 절반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력서 내용도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씨는 “면접에 와서 면접 확인서부터 내밀며 사인부터 요구하는 경우도 봤다”면서 “구직 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 활동 시늉을 하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던 자영업자와 호텔·여행사 같은 업종이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이후 이른바 ‘인력난의 역습’을 겪고 있다. 코로나 당시 직원을 줄이거나 무급 휴직을 실시했던 업종일수록 위드 코로나 이후 늘어나는 손님을 맞기 위해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배달앱 라이더같이 자유롭게 일하면서 짭짤한 돈을 벌 수 있는 긱 이코노미(gig ecomony·임시직 경제) 일자리로 대거 빠져나간 데다, 최저임금과 별 차이가 없어진 실업 급여를 받는 쪽을 택하는 비정규직 청년들이 늘어난 것도 인력난의 한 원인이다.
◇손님 늘어나는데…식당도 예식장도 여행사도 “일손 부족”
“음식이 언제 나올까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19일 오후 경기도 광주의 한 결혼식장 피로연장. 하객 100여 명으로 꽉 찬 피로연장에서 직원 8명만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결혼식장 인원 제한이 이달 들어 최대 250명까지 확대되면서 내년 초까지 예식장 예약이 꽉 찼지만, 업체들은 정작 인력이 모자라 울상이다. 예식장 매니저 황모(38)씨는 “사무실 직원들은 물론이고 매니저·대표까지 피로연 서빙을 뛰고 있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업체 ‘알바천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용하려는 구인 공고 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7.3%가 늘어났지만, 구직 건수는 9.3%가 줄었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찾는 이들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줄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25~29세 구직자는 16.1%가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호텔 업계도 위드 코로나 이후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23일 ‘피플앤잡’ ‘푸드앤잡’ 같은 업체에 올라온 호텔 업계 구인 건수만 80여 건이다. 조리사·기물관리·바리스타부터 회계직까지 공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에 경력 직원의 20~30%가량이 이탈했고 이들 상당수는 재택근무나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업종을 찾아 떠났다”고 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기 승무원 중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거나 유튜브에서 화장품·패션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로 변신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보다 실업 급여”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모(27)씨는 지난달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6개월을 근무했는데 마지막 달엔 일부러 자주 지각했다고 했다. 해고를 당해야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르바이트 월급과 실업 급여가 비슷하니 굳이 1년 내내 일할 필요는 못 느낀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고용센터의 상담 직원 A씨는 “갈수록 신청자가 많고 실업 급여를 반복 신청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면서 “가끔 이곳에서 접수된 구직 이력서 중 허위가 많다는 항의 전화도 받지만, 상담 업무가 바빠 일일이 확인하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미국에서도 최근 과도한 실업 급여가 근로 의욕을 약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면서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실업 급여로 인한 인력난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