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순혈주의를 과감히 깨고 외부 전문가들을 대표이사에 영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그간의 실적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이례적인 조치에 나섰다는 평가다. 조직 구조도 대폭 개편, 기존의 사업 부문(Business Unit·BU) 체제를 대신해, 산업군 체제(Head Quarter·HQ)를 도입했다.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조직 수술에 나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순혈주의 깬 롯데
롯데그룹은 25일 롯데지주를 포함한 38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2022년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통 롯데맨’을 임원으로 앉혔던 기존 관행을 과감히 버렸다는 점이다. 그룹 주력인 유통 사업군 총괄 대표, 호텔 총괄 대표를 외부에서 영입했다. 새 유통 사업군 총괄 대표로 선임된 김상현 부회장은 한국 P&G 대표와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낸 글로벌 유통 전문가로 꼽힌다. 2018년부터는 동남아의 대표 유통 회사인 홍콩의 DFI리테일그룹에서 동남아시아 총괄 대표를 지냈다.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후 외부 인사가 대표를 맡은 건 42년 만에 처음이다.
호텔 총괄 대표로 선임된 안세진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AT커니 출신이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LG그룹과 LS그룹에서 신사업과 사업 전략을 담당했다. 2018년부터는 모건스탠리 PE(사모펀드) 소속으로 자신들이 인수한 외식 업체 ‘놀부’의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호텔 사업군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롯데호텔 상장을 추진하는 숙제를 맡게 됐다.
최근 실적 회복에 성공한 화학 사업군에선 김교현 화학BU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롯데지주의 이동우 대표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식품군 총괄대표는 식품BU장인 이영구 사장이 롯데제과 대표를 겸하며 담당한다.
경쟁기업 출신도 과감히 영입했다. 롯데쇼핑의 백화점 사업부 신임 대표로는 지난 2019년 신세계그룹에서 영입된 롯데GFR(패션 사업)의 정준호 대표를 내정했다. 정 대표는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20년 이상 신세계그룹에서 일했다.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와 입사 동기로 알려졌다. 롯데GFR 대표는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 상품본부장인 이재옥 상무가 맡는다.
영화관 운영사 롯데컬처웍스 대표로는 최병환 CGV 전 대표가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됐다. 모바일 멤버십 서비스를 총괄하는 롯데멤버스도 신한DS 디지털본부장 출신의 정봉화 상무를 전략부문장으로 임명했다.
◇“의사 결정 빠르도록 조직 수술”
조직 자체도 기존 BU 체제보다 의사 결정이 신속해지도록 개편됐다. 식품, 쇼핑, 호텔, 화학, 건설, 렌털을 6개 사업군(HQ)으로 묶었고, 식품, 쇼핑, 호텔, 화학 사업엔 각각 1인 총괄 대표를 앉혔다. 롯데는 2017년 검찰 수사로 회사 경영에 차질을 빚자, 인적 쇄신을 위해 BU 체제를 도입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직 체계가 오히려 유통에서의 실적 부진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다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사업군별로 HQ 조직을 두도록 했다. 롯데 관계자는 “사업군별 HQ를 통해 주요 경영 현안이 신 회장에게 직접 보고되는 형태”라고 말했다.
롯데지주는 그룹 전체의 전략 수립과 미래 신사업 추진, 핵심 인재 양성 같은 지주사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하도록 했다. 지주사와 HQ·계열사 간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 롯데지주 경영혁신실 아래에 사업지원팀도 신설했다. 롯데 관계자는 “열린 조직, 성과를 내는 조직으로 가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