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수원시 영통구 CJ제일제당 바이오연구소에 들어서자 포도당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커다란 비커처럼 생긴 5L들이 유리통이 한 줄당 8개씩 20줄 넘게 이어져 있었다. 통 속에서는 갈색 액체가 소용돌이치듯 돌아가고 있었다. 이 연구소의 심세훈 부장은 “액체 한 통에는 18조마리나 되는 대장균이 들어 있다”며 “대장균은 몸속에 플라스틱을 가득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CJ제일제당은 내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바이오 생분해 플라스틱을 시범 생산하고 있다. 석유에서 뽑아내는 일반 플라스틱은 썩는데 100년 이상 걸린다. 반면 CJ제일제당이 만드는 PHA라는 이름의 생분해 플라스틱은 땅속과 바다에서 각각 4개월, 6개월이면 흔적 없이 분해된다.
기업들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 자연 상태에서 쉽게 분해되는 생분해 플라스틱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식품 포장지와 일회용 용기에 쓰이는 플라스틱 수요가 폭증하고 사용 규제도 강화되면서,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범 생산 단계에 있던 기업들은 본격적인 상업 생산을 서두르고, 일부 기업은 관련 기술을 보유한 외부 기업과 합작사를 세워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123만t 수준이던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량은 2030년 970만t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CJ, 2025년까지 6만5000t 생산
CJ가 만들어내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대장균의 유전자를 조작해 대장균 체내에서 PHA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성분을 키우는 방식으로 만든다. 전 세계에서 PHA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CJ를 포함해 단 3곳뿐이다. 대장균을 활용한 플라스틱 개발에 식품·바이오 분야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 관계자는 “CJ는 다른 PHA 제조 기업들보다도 유연성이 뛰어난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며 “비닐봉지부터 식품 포장재, 의료용품, 섬유, 빨대까지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인도네시아에 짓고 있는 바이오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 공장을 연내 완공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5000t 생산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6만5000t으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신수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바이오 플라스틱이 식품과 함께 CJ제일제당의 핵심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 기업들의 차세대 먹을거리
국내 주요 화학 기업들도 생분해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LG화학은 옥수수에서 추출한 포도당을 이용해 PLA라는 이름의 생분해 플라스틱을 개발, 2025년까지 미국 현지에 7만5000t 규모의 PLA 공장을 세워 상업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세계 4대 곡물 기업인 미국 ADM과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ADM이 바이오 생분해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포도당 추출과 발효를 맡고, LG화학은 이를 기반으로 플라스틱 원료를 만든다. LG화학은 GS칼텍스와도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 양산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LG화학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아직 기술 개발이 초기 단계여서 다양한 성분을 실험하면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다른 기업과 적극적으로 제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KC도 최근 식품 회사인 대상, 종합상사인 LX인터내셔널과 1800억원을 들여 합작사를 세우고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 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 SKC는 2018년 국내 처음으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화에 성공했지만 수입 PLA 소재를 자체 기술로 가공해 포장재로 만들었다. 앞으로는 대상·LX와 손잡고 직접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생분해 플라스틱 수요가 늘면서 가격도 오르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중국은 올해부터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생분해 플라스틱 수요가 늘면서 PLA의 가격이 2019년 대비 2배가량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