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경남 김해 주촌면에 있는 부일금고 본사 1층에서 박재환 대표가 자사의 ‘디자인 금고’ 앞에서 웃고 있다. 박 대표는 “금고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받아들이는 트렌드를 겨냥해 디자인에 신경 쓴 제품들을 집중 개발, 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환 기자

지난 29일 경남 김해 주촌면에 위치한 부일금고 본사. 철판을 구부리고 자르는 장비(자동 절곡기) 속으로 얇은 철판이 빨려 들어갔다. 기계 속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이리저리 구부러지던 철판은 90초 만에 넓이 20cm 크기의 개인용 금고가 돼 나왔다. 박재환(50) 부일금고 대표는 “이렇게 만들어진 금고들이 세계로 나가는 것”이라며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금고 업계에선 ‘BOOIL’이라는 브랜드가 나이키만큼 유명하다”고 말했다.

부일금고는 작년 매출액 180억원 가운데 약 95%가 수출에서 나왔다. 수출액만 따지면, 국내 금고 회사 중 1위다. 박 대표는 “부일금고가 가정용 금고 시장에서 전 세계 1·2위를 다툰다”고 말했다.

부일금고가 수출하는 나라는 80여 국. 그중 주력 시장은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 같은 곳이다. 내전이 잦거나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일수록 가정마다 개인용 금고를 두는 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이라크에선 은행에 돈을 맡겨도 테러 단체가 털어가는 경우가 있어, 귀중품을 집 안 금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나오지만, 부일금고가 처음부터 수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1년 박 대표의 아버지인 박일국 회장이 창업한 부일금고는 ‘영세 철공소’ 수준이었다. 박 대표가 가업을 잇기 위해 2002년 회사에 입사했을 때, 금고 제조업은 사양산업이었다. 국내에서 집이나 회사에 귀금속과 현금을 직접 보관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고, 대기업들이 보안 산업에 뛰어들면서 금고 수요도 감소했다. 박 대표는 입사 직후부터 해외 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금고 제작은 아버지와 현장 기술자들이 가장 잘 아는 만큼, 새로운 수요처를 찾는 게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해외시장 조사를 통해 치안이 불안하고 현금 거래가 많은 중동과 남미 시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2~3국씩 묶어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고, 해외 출장을 다녔다. 박 대표는 “호텔 벨보이에게 200달러를 쥐여주고 함께 전화번호부 책을 뒤져 금고 매장에 전화를 걸며 판매처를 뒤진 적도 있다”며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카탈로그를 쥐여주고 샘플을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3년간 해외시장에 공이 들이자, 남미와 중동의 금고 도매상들로부터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 수요처를 뚫는 데 성공한 박 대표가 그다음 주력한 것은 공장 자동화였다. 품질은 인정받은 만큼,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금고를 공급하는 게 중요했다. 박 대표는 “7년 전 공장을 이전하면서는 국내 금고 회사 중엔 처음으로 대당 15억원씩 하는 자동화 기계를 3대나 들여놨다”며 “그 덕에 생산 비용을 경쟁사 대비 10%가량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최근 선진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스웨덴·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는 목조 건물이 많아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개인 금고 수요가 많다. 선진국 시장에서 국가별로 다른 내화(耐火) 인증을 받기 위해 최근엔 국내 최초로 3억원을 들여 인증 실험용 화로를 공장에 설치했다. 박 대표는 “해외시장 공략과 적극적인 기술 투자로 금고 제조업이라는 전통 산업에서도 글로벌 일류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