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사들이 해운업을 넘어 종합 물류 업체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해운 운임이 폭등하면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외연 확장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항공 화물과 철도 사업까지 진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 유일의 대형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채권단 관리 아래에서 이 같은 신사업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보유 선박 규모에서 글로벌 선사에 뒤처지는 HMM이 사업 구조에서도 밀리고 있다”며 “국내 해운·물류 산업을 위해서라도 오랜만에 찾아온 해운 호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선사들, 종합 물류 기업으로 변신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지난 8월 미국 풀필먼트(종합 물류센터) 업체 비저블SCM을, 지난 9월엔 포르투갈 풀필먼트 업체인 HUUB를 잇따라 인수했다. 풀필먼트는 상품 보관·포장·출하·배송을 일괄 처리하는 서비스로, 육상 물류에서 ‘허브(중심지)’ 역할을 한다. 머스크는 이번 인수로 물건을 항만에서 항만으로 운송하는 것을 넘어, 내륙 배송까지 진출하게 됐다. 머스크는 항공 화물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머스크는 항공 화물 자회사 스타 에어(화물기 15대 운용)를 운영 중인데, 지난달엔 독일 항공 화물 업체인 세나토 인터내셔널(화물기 6대 운용) 인수 계획을 발표하며 항공 물류 사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 CGM도 지난 2월 항공 화물 자회사인 CMA CGM 에어카고를 설립했다. 60t급 화물기 4대를 운영하며 북미·중동 지역의 항공 화물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미국 보잉사에 102t까지 적재 가능한 화물기 2대를 발주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에어버스에 화물기 4대(100t 이상급)를 추가 주문했다. CMA CGM은 지난 7월 스페인 철도 운영사인 컨티넨탈 레일도 인수해 철도 운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HMM 투자 막는 채권단 관리 체제
글로벌 해운사들이 이처럼 발 빠르게 신사업에 진출하는 것과 달리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은 기존 해상 물류 이외의 신사업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HMM도 신사업 진출 의지가 높지만, 채권단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HMM은 글로벌 해운업 불황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던 2017년부터 약 3조3000억원을 빌리면서 영구채(30년 만기)를 발행해 채권단(산은·한국해양진흥공사)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HMM이 신사업 투자를 위해선 채권단의 허락이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 10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6000억원어치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약 2조7000억원의 영구채가 남아 있다. 계약상 HMM은 2023년 10월부터 채권단에 조기 상환 청구를 할 수 있다. 해운업계에선 조기 상환 시기를 더 앞당겨 HMM이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서 벗어나, 신사업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HMM이 올해 해운 호황으로 3분기까지 누적 4조678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보유한 현금만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면서 “내년에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전망이지만 HMM은 돈이 있어도 빚을 조기에 갚지도 못하고, 신사업 투자에도 나서지 못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영구채 조기 상환뿐 아니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지분(총 40.65%)을 매각해 HMM을 완전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은이 영원히 HMM을 관리할 게 아니라면 어차피 매각을 해야 한다”면서 “사업·재무구조가 탄탄한 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는다면 HMM도 자유롭게 투자에 나설 수 있고 그룹과 HMM이 함께 성장하는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