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전문 스타트업 정육각의 당일 배송에 참여하는 조모(49)씨는 일주일에 나흘 오후 1시쯤 남태령 물류센터에서 고객에게 배송할 고기를 차에 싣는다. 조씨가 스마트폰 앱에 배송을 시작할 장소와 마지막으로 끝낼 장소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압구정동에서 시작해 역삼동, 논현동, 신사동, 양재동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뜬다. 정육각이 자체 개발한 경로 최적화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짜준 것이다.
지난해 11월 자체 배송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배송 기사들은 고기가 든 보랭팩에 배송 순서를 수기로 적었다. 배송할 순서를 알아서 짠 것이다. 정육각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동차 전용 도로와 교통 정보, 그리고 실제 기사들의 주행 정보를 종합해 최적의 경로를 짜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정육각 관계자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 후 배송 지연 건수가 74% 줄었다”며 “기사는 더 빨리 일을 끝마치고 고객은 제시간에 배송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문한 물건을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배송에 기술을 입히는 업체가 늘고 있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배송을 마치려 업체마다 배송 시간, 인력과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는 데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알고리즘이 ‘최적의 경로’ 짜준다
GS리테일은 이달 초 카카오모빌리티에 650억원을 투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며 차량 배차, 길 안내, 실시간 교통량, 이동 수요 예측 같은 분야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쌓고 있다.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물류센터와 점포를 오가는 배송부터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최종 배송 단계까지 모두 도움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장기적으론 자율 주행 기술을 활용한 배송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인 SSG닷컴 물류센터에선 배송 박스가 출하될 때부터 알고리즘이 짠 순서대로 나온다. 배송 기사는 배송 상자가 나오는 순서대로 차량에 싣기만 하면 된다. 가장 마지막에 실어 차량 입구에 가까운 물건부터 배송하는 구조다. 알고리즘은 스스로 학습해 경로를 수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배송 기사가 자동 배정 경로가 아닌 자신이 정한 순서대로 반복적으로 배송하면 시스템이 그 경로를 비교해보고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면 다음부턴 그 길로 안내하는 식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 8월 허브 터미널과 서브 터미널, 물류센터를 오가는 중간 운송 단계에 알고리즘 시스템을 도입했다. 출발·도착지, 이동 거리, 차량 크기, 화물 정보 등을 분석해 빈 차로 운행하는 일을 최소화한 것이다. 예컨대, 11톤짜리 화물차가 서울에서 물건을 싣고 대전 허브 터미널에 도착하면 곧바로 다음으로 갈 곳을 배정해준다. 화물차 운전자는 대기 시간을 줄여 운송비를 더 벌고, 물류업체는 제시간에 가까운 곳의 화물차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다만 CJ 대한통운은 이 시스템을 최종 배송 단계엔 도입하진 않았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 물량이 워낙 많아 한 배송 기사가 담당하는 구역이 아파트 단지 4~5개 정도”라면서 “이동 경로가 복잡하지 않고 길이도 길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좌회전 안 하는 UPS, 무인 트럭 모는 월마트
해외에서도 물류 회사부터 유통업체까지 운송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UPS는 자체 경로 최적화 시스템 ‘오리온’을 운영하고 있다. UPS 배송 트럭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좌회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대기 시간을 없애 연료 소모를 줄인다는 목적인데, 오리온 시스템이 좌회전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노선을 설계해준다.
월마트는 지난 8월부터 아칸소주에서 자율 주행 물류 스타트업 가틱과 함께 무인으로 물류창고와 매장을 오갈 수 있는 자율 주행 트럭을 운행하고 있다. 가틱 측은 “소비자와 가까이 있는 물류창고일수록 크기가 작아 창고와 매장을 오가는 반복적인 이동이 많다”며 “자율 주행 트럭을 도입하면 물류 비용을 최대 3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월마트는 상품을 최종 목적지까지 드론으로 나르는 실험도 미국 일부 지역에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