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업계에서는 올해 이달 22일까지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68척을 수주했다. LNG 선박은 척당 수주 가격이 2억달러(약 2400억원)로 대표적인 고부가 가치 선박으로 꼽히는데, 전 세계 발주된 74척 중 92%를 싹쓸이한 것이다. 업체별로 현대중공업그룹이 32척, 삼성중공업이 21척, 대우조선해양이 15척을 각각 수주했다.
하지만 한국 조선사들의 화려한 LNG 수주 실적 뒤에 돈을 버는 곳은 따로 있다. LNG선 설계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프랑스 GTT는 척당 수주 가격의 5%를 로열티로 가져간다. 합치면 최소 8000억원이다. 국내 조선 업계 고위 임원은 “재주는 우리가 넘고, 돈은 프랑스 GTT가 번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사 LNG선 영업이익률 1~2%, 프랑스 업체 로열티는 5%
LNG선은 초저온에서 액화한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선박이다. 연료도 LNG를 쓰기 때문에 대표적인 친환경 선박으로 꼽힌다. LNG선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는 영하 163도에서 액화된 천연가스를 담는 LNG 탱크다. 내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LNG가 급격히 팽창, 폭발할 수 있어 정교한 설계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름에는 190도가 넘는 내·외부 온도 차를 견뎌야 한다.
국내 조선 3사의 핵심 경쟁력은 사각형의 ‘멤브레인형 화물 탱크’다. 1990년대까지 전 세계 LNG선 시장을 석권한 일본의 둥근 ‘모스형 화물 탱크’를 밀어내고 국내 조선 업체가 LNG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멤브레인형 화물 탱크는 모스형보다 적재량이 40% 많은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 조선 업체들은 원천 기술이 없다. 프랑스 GTT가 멤브레인형 화물 탱크 설계 원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1척을 만들 때마다 선가(船價)의 약 5%인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총 68척의 LNG선을 수주한 조선 3사가 로열티로만 8000억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LNG선 한 척을 만들 때 국내 조선사의 영업이익률이 겨우 1~2%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액수가 로열티로 나가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한때 2억5000만달러까지 치솟았던 LNG선 가격은 점점 내려가고 인건비와 후판 같은 원자재 비용은 올라 조선 회사의 LNG선 영업이익률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며 “ 힘들게 배를 만들어 정작 GTT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조선 업계에서는 “2012년 GTT가 매물로 나왔을 때 인수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는 말이 나온다. 해외 선사들이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채택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앞으로도 GTT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갈 길이 먼 원천 기술 확보
국내 조선회사들은 원천 기술 개발 확보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와 한국가스공사는 2014년 한국형 LNG 화물 탱크 설계 기술 KC-1을 공동 개발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해 2018년 건조한 2척의 LNG선은 화물 탱크 외벽에 결빙 문제가 발생했고, 수리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운항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조선 3사는 KC-1에 이어 KC-2 개발에 착수해 내년 말까지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지만,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대형 컨테이너선의 선박 엔진도 원천 기술이 없어 고가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시장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며 이 분야 세계 1위지만, 원천 기술은 독일 만사(社)와 중국 윈지디사(社)가 갖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대형 엔진을 만들 때마다 엔진 가격의 5~10%를 이 회사들에 로열티로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