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부촌(富村) 상권인 압구정역이 서울 강남역을 제치고 처음으로 국내 상권 1위에 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여행이 줄고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부촌인 압구정이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을 밀어낸 것이다.

SK텔레콤은 자사 빅데이터 플랫폼 지오비전을 통해 상권별 매출과 유동 인구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3위 상권이었던 압구정역이 올해 1위에 올랐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1위였던 강남역 남부(강남역~우성아파트앞 사거리)는 3위로 밀려났고 지난해 2위였던 강남역 북부(강남역~신논현역)는 올해도 같은 자리를 지켰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012년 상권 분석을 시작한 이래 압구정역이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지오비전은 올 1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상권의 카드 매출, 유동 인구, 업소 밀집 수준, 소상공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매출액을 추정해 100대 상권 순위를 정했다.

SK텔레콤의 상권 분석에 따르면 매출 상승률 순위에서도 서울의 부촌 상권인 압구정역과 청담역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두 상권의 월 매출은 코로나 악재 속에서도 전년에 비해 각각 40%, 32%나 늘었다. 두 지역 모두 대표적인 고소득 주거지인 데다 명품 브랜드 매장과 고급 식당들도 많다. 지오비전팀 관계자는 “압구정역과 청담역은 코로나로 내수 소비가 고급화되는 현상의 수혜 지역이 됐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소비 양극화에 압구정·청담 매출 늘어

이번 조사에서 압구정역 상권의 하루 1인 평균 매출은 5만9000원였다. 청담역은 코로나 전인 2019년 전국 상권 순위에서 120위권이었는데 올해 59위로 2년 만에 60계단이나 넘게 뛰었다. 100위 안에 든 상권 중 유동 인구(3만2000명)가 가장 적지만 유동 인구가 10배에 달하는 사당역(30만800명)보다 1인 평균 매출은 더 많다.

압구정역과 청담역은 비교적 적은 유동 인구에 비해 매출이 높아 코로나 이후의 소비 양극화를 잘 보여준다. 압구정역의 하루 평균 유동 인구는 23만1341명으로 강남역 남부(46만3432명)의 절반 수준이지만 상권별 월평균 매출로 보면 압구정역(4092억원)이 강남역 남부(3586억원)보다 500억원이나 많다.

코로나 전인 2019년과 올해를 비교했을 때 순위 하락이 가장 큰 상권은 건대입구역(63위 → 96위)과 명동역(58위 → 90위)이었다. 건대입구역은 비대면 수업의 영향이, 명동역은 해외 관광객이 줄어든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직장인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도 순위가 떨어졌다.

명동과 같은 기존의 대표 상권이 저물고 청담역과 압구정역 상권이 뜬 것은 상업용 부동산 가격과 공실률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명동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47.2%였지만 압구정의 공실률은 7.4%로 지난해 1분기보다 7.3%포인트 낮아졌다. 명동 중대형상가 임대료(1㎡당 )의 경우 지난 3분기 19만97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32.7%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청담역 상권에 속하는 도산대로와 압구정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각각 1.7% , 1.1%씩 상승했다.

◇애견숍은 급증, 어린이집·유치원은 급감

지오비전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기간이 길었지만 점포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10월 기준 전국 업소와 매장은 약 192만개로 코로나 전인 2019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하지만 업종 간 희비가 크게 갈렸다.

애견·애완동물숍은 2019년 8500개에서 올해 1만1500개로 2년간 34% 늘어나면서 가장 증가율이 높았다. 커피 전문점도 같은 기간 26.3% 증가해 점포 수 증가율 2위에 올랐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애완동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업무를 보는 재택근무자들이 늘면서 지난 2년간 커피 전문점 창업이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기간 점포가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어린이·유치원(-13.7%)이었다.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이 어려운 음식을 판매하는 별식·퓨전요리 식당(-7.5%)과 양식당(-7.1%)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