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청년은 항상 우리의 미래입니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대장정에 청년 여러분이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정의선 현대차 회장)

27일 청와대 유튜브 공식 계정에 올려진 <청년들의 고민과 불안, ‘청년희망ON’을 통해 기업이 함께 짊어지겠습니다 >라는 제목의 청년희망온 참여기업 대표 영상메시지.이 영상에는 2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한 국내 대기업 총수 6명이 차례로 등장한다./청와대

지난 27일 청와대는 유튜브 공식 계정에 ‘청년희망온(ON) 참여 기업 대표 영상 메시지’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11분 분량의 동영상에는 이날 낮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국내 대기업 총수 6명이 차례로 등장했다. 청와대는 이번 회동에 대해 국내 대기업 6곳이 정부의 청년 일자리 양성 사업인 청년희망온에 동참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회동에 앞서 지난주 ‘청년 채용 관련한 영상 메시지를 1~2분 분량으로 만들어 제출하라’는 메시지를 각 기업에 전했고, 그 결과물이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 이어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구현모 KT 사장이 1~2분가량 순서대로 등장한다. “기업이 해야 할 책임은 ‘건강한 일자리 창출’임을 잊지 않겠습니다”(최태원 회장), “청년 여러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드리는 게,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구광모 회장)라는 내용이다. 대통령을 의식해 다짐을 되풀이하는 정도다.

재계에서는 대기업 총수들이 청와대 행사에 들러리 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영상 메시지 제출까지 요구하는 것은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영상을 본 재계 관계자들은 “대기업 총수들을 동원해 공익광고를 찍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감사의 자리냐”며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쇼통’으로 일관한다”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번 청와대 회동과 동영상 촬영으로 해당 대기업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기업 총수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업 점검차 출장 중이었는데, 청와대 행사 때문에 급히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동영상 과제까지 주어지자,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각 기업들은 ‘시간 내에 촬영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그러면 행사 당일 청와대에서 별도로 1~2분씩 말하는 장면을 찍겠다”고 하자, 각 기업들은 부랴부랴 총수들의 대외 일정을 조정했다. 일부 대기업은 청와대 행사 당일에서야 겨우 촬영을 마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이미지와 총수 개인의 이미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촬영 장소 섭외에서부터 메시지 작성 , 총수 일정 조율까지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며 “이런 동영상 쇼가 실제 청년 일자리 창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 최대 행사인 ‘대한상의 신년인사회’에는 매년 불참하면서, 대통령이 주연이 되는 행사에는 기업인들을 수시로 들러리 세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2월, 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정부의 경제 피해 최소화 노력에 경제계도 적극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직후 코로나 사태가 더욱 확산되면서, ‘코로나가 곧 끝날 테니 더 열심히 잘하겠다’고 다짐한 재계 총수들도 함께 우습게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