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3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이덕훈 기자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절반 이상이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경우 사업 규모를 줄이고 신규 투자도 보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중대재해법이 국내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것을 넘어 외자 유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본지가 한국경영자총협회·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에 의뢰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4일까지 국내 외투 기업 121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2.1%가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 책임자가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으면 사업·투자를 축소·보류하겠다”고 답했다.

또 외국 기업 33.9%는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을 경우 외국인 CEO가 본국으로 귀국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귀국이 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은 10.7%에 불과했고, 55.4%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한 외국 기업 관계자는 “정부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대재해법을 도입했지만 실제 외국인 CEO들은 이러다 구속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서 “굳이 이런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확대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외국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으로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응답 기업의 45.5%는 중대재해법이 한국의 투자 매력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은 16.5%에 그쳤다.

중대재해법으로 인한 가장 큰 애로는 ‘불명확한 경영 책임자의 범위와 의무 내용’(58.7%·복수 응답)이라고 답했다. ‘법 이행 준수를 위한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46.3%로 뒤를 이었고, 감독관청의 자의적인 법 집행(33.9%), 과도한 형사처벌(33.1%)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외국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의 산재 예방 효과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62%가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경영자를 형사처벌하는 것과 사고 예방은 큰 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 관련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47.1%가 사법조치 전 시정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답했고, 41.4%는 형벌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형사처벌 강화라고 응답한 기업은 5.7%였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지난 1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경영계는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외국계 기업의 투자까지 주저하게 만드는 중대재해법을 보완 입법 없이 시행한다면 심각한 투자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으로 다음 달 27일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