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첫 근무일인 3일, 주요 대기업들은 새로운 목표 달성을 다짐하는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년 메시지로 한 해를 시작했다. 유통업계 라이벌 롯데·신세계그룹은 신년사에서 서로 똑같은 격언을 인용, 새해에도 양보 없는 혈투를 예고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3년째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올해는 임직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통적 방식 대신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 시무식, CEO가 아닌 사원이 신년사를 읽거나 음악회와 스크린 골프 이벤트로 시무식을 대신하는 파격적인 시무식이 곳곳에서 열렸다.
◇새해 다짐형… ”100년 기업을 향한 첫발”
재계 총수들의 신년사에는 ‘올해를 새로운 변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원년으로 만들자’는 다짐이 빠지지 않았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하에서 100년 기업을 향한 그룹 지속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오는 2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는 그룹 창립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창업 당시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되새기며 100년 한화의 미래를 향한 도약의 한 해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올해는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함께 대한항공이 ‘메가 캐리어’(대형 항공사)로 나아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항공업계를 재편하고 항공역사를 새로 쓰는 과업인 만큼 흔들리지 않고 나가자”고 말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한층 단단해지고 달라진 모습으로 전열을 갖췄다”며 “더 큰 도약을 향해 자신감을 갖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다음 달 채권단 관리에서 조기 졸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명 문구 인용형…격언 좋아하는 유통업계
유통업계 총수의 신년 메시지에는 모두 인용 경구가 등장했다. 특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Gretzky)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샷은 100% 빗나간다’는 격언을 동시에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그레츠키는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다인 2857점을 득점한 전설적인 선수다. 신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인 도전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했고, 정 부회장도 “실패해도 꾸준히 실천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부회장은 신년 동영상에서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을 프레젠테이션하듯이, 신세계그룹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계획은 즉각 수행되지 않으면 좋은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국 유명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Drucker)의 격언을 인용했다. 정 회장은 “올 한 해 변화를 빨리 읽고 성장의 기회를 잡아 적극적으로 실행하자”고 말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중국 송대 시인 소동파의 ‘춘강수난압선지(春江水暖鴨先知)’를 인용, “오리가 추운 겨울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강물이 따뜻해지는 것으로 봄을 읽듯이, 고객의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격형…메타버스에서 신년사 발표한 정의선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기존 시무식 형태를 파괴한 ‘파격 시무식’도 많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에 동영상으로 등장해 전 세계 임직원들에 새해 메시지를 전파했다. 정 회장은 “올해는 자율주행, 로보틱스, UAM(도심항공모빌리티)과 같은 미래사업 영역에서 스마트 설루션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나갈 계획”이라며 “(자율주행 분야에선) 운전자의 개입을 최소화한 레벨4 기술을 탑재한 다양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이고 2023년 양산될 아이오닉 5 기반 자율주행 차량을 시험 주행하겠다”고 밝혔다.
애경그룹은 계열사인 애경산업·AK플라자·제주항공·애경케미칼의 사옥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가상공간에 모여 새해 소망을 빌고 타로점으로 신년 운세를 보는 이색 시무식을 열었다.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부회장은 직원 휴게공간에서 미니콘서트와 스크린골프 이벤트를 열고, 신년사 대신 ‘행복한 조직문화 구축을 위한 6대 과제’를 제시했다. 코오롱그룹은 최우수 사원으로 꼽힌 이제인 코오롱글로벌 신임 상무보가 신년사를 발표했다. 최고경영자가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