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 플라스틱 가공 업체 공장에서 직원이 생분해 플라스틱 수지로 만든 비닐봉투를 검수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설비를 확장하려 했지만 환경부 규제로 전면 백지화했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작년 11월부터 거래처 주문 물량이 30%씩 줄고 있어요. 130억원을 들여 2공장을 짓고 있는데 그냥 창고 건물로 써야 할 판입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 가공 공장을 하는 이모 대표는 막막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해 친환경 인증을 해주지 않겠다’는 환경부의 행정예고가 나오자 주문이 급감한 탓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토양이나 바닷물 속에서 자연 분해되는 플라스틱으로, 이를 원료로 만든 비닐·용기는 그간 친환경 인증을 받아왔다. 그런데 정부가 방침을 바꾸면서 이씨 공장 같은 곳에서 원료를 구입해 완제품을 만들던 기업들이 폐기물 부담금을 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씨는 “정부가 생분해 플라스틱이 순환 경제 핵심이라며 권장하더니 이제 와 뒤집었다”고 말했다.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 이걸 녹여 비닐봉투나 각종 용기를 만든다.

◇오락가락 정책에 업계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

기존 플라스틱과 달리 생분해 플라스틱은 수개월이면 자연 분해돼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았다. 환경부도 2003년 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한 친환경 인증 기준을 발표하고 제품 확산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산업부도 2020년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고, 2022년까지 울산에 바이오화학 소재에 대한 공인인증센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현재 200개 이상 기업이 400종이 넘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있고, 국내 시장 규모도 3000억원 이상으로 커졌다.

문제는 생분해 플라스틱 분리 수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쓰고 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들이 종량제 봉투에 버려져 대부분 소각 처리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분리 수거 대책은 없이 보급에만 열을 올린 결과, 환경단체 등에선 “생분해 플라스틱 보급 정책은 사실상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친환경)”이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환경부도 결국 정책을 바꾼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만 믿고 투자해온 업체들은 판로를 잃게 됐다”며 반발한다. 대표적으로 편의점 업계의 수요부터 줄어들고 있다.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닐 봉투는 일반 비닐봉지보다 5배가량 비싸지만 친환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써왔다”며 “환경인증을 받지 못하는 제품을 이젠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약국용·배달 음식용 봉투를 만드는 한 업체 관계자는 “재작년부터 생분해 플라스틱 설비로 모두 교체했는데 날벼락 맞았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유럽·중국은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 육성

해외 각국은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같은 유럽 국가는 생분해 소재를 제외한 플라스틱 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생분해 제품 제조업체에 2만유로(약 2700만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준다. 독일의 경우 생분해 플라스틱 제조업자에게 수거·분해 의무를 지우고 소비자들이 생분해 플라스틱을 별도로 분리하게 해 지자체별로 매립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도 작년부터 4대 직할시와 27개 성도(省都)에서는 비분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이 사용하는 생분해 비닐봉지만 연간 1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 시장에 뛰어들었던 CJ제일제당, LG화학, SKC 등 대기업들은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판로를 해외로만 돌려야 할 처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은 커지는데 국내에선 규제만 하려 드니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