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의 이마트 프레시센터에는 작년 여름 경북 김천에서 수확한 샤인머스켓 160t이 저장돼 있다. 올 설부터 3월까지 판매할 물량이다. 여름철 수확해 10월까지만 맛볼 수 있던 샤인머스켓을 한겨울부터 초봄까지 내놓는 것이다. 샤인머스켓의 신선도를 지켜낼 수 있는 건 바닥에 깔린 유황 패드 덕분이다. 유황 성분이 곰팡이균 번식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2년의 실험을 거쳐 샤인머스켓을 장기 저장할 수 있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찾았다”며 “덕분에 제철 맛을 유지하고 있는 국산 샤인머스켓을 수입산보다 20~30% 싸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의 ‘프레시테크(신선기술)’가 진화하고 있다. 제철 과일 같은 신선 식품을 가장 맛있고 공급이 많은 시기에 구매해 신선하게 보관한 뒤 공급이 부족해진 시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다. 대형 마트들은 저마다 1000억원 이상을 들여 신기술을 접목한 저장고를 만드는 등 프레시테크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제철 사과 2000원 더 싸게 공급하는 저장 기술
충북 증평의 롯데마트 신선품질혁신센터에는 공기 제어(CA·Controlled Atmosphere) 저장고가 있다. 공기 성분을 조정해 신선 식품을 장기 저장할 수 있게 한 특수 창고다. 공기 중 21%인 산소는 이곳에선 2~3%로 뚝 떨어진다. 반면 대기 중 0.03%뿐인 이산화탄소는 0.5~1.2%까지 올라간다.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 과일과 채소는 노화가 늦춰진다. 산소 마스크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이곳엔 작년 11월 딴 사과(부사) 520t이 5개 저장고에 분산 저장 중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가을이 제철인 사과는 보관을 잘해도 이듬해 4월부터는 ‘늙은 사과’가 돼 맛이 떨어지지만 CA 저장고에선 선도가 유지된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오는 4월부터 7월까지 3주에서 한 달 간격으로 5개 저장고를 차례로 열어 사과를 출시할 예정이다. 작년 4월에도 이런 방식으로 평균 시세보다 2000원이나 저렴한 사과를 선보였다.
보관이 가장 까다로운 수박은 냉장고에서도 사흘이 지나면 선도가 크게 떨어진다. 장마엔 수분을 흡수해 당도가 떨어지고, 폭염을 만나면 수박 내 당도가 일정치 않게 된다. 하지만 국내 대형 마트들은 수박 선도를 열흘 가까이 유지할 수 있다. 그 비결은 섭씨 5~10도의 찬 식염수를 수박 표면에 뿌려주는 방식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수박은 저온이면서 다습한 조건에서 보관 기간이 늘어난다”며 “식염수 냉각 방식은 수박을 마르거나 상하지 않게 유지시켜 준다”고 말했다.
◇고구마는 자가 치료 활용
고구마나 브로콜리 같은 신선 채소를 사철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프레시테크 덕분이다. 브로콜리와 양상추 보관엔 진공 냉장 기술이 쓰인다. 수확한 채소의 내부까지 온도를 재빨리 낮춰 채소의 호흡·효소 작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브로콜리의 경우 일반적인 냉장 방식으로는 내부 온도를 섭씨 10도까지 낮추는 데 24~48시간 걸리지만, 진공 냉장 방식으로는 5도까지 낮추는 데 40분이면 된다. 진공 냉장 업체인 명일농산 관계자는 “단 5분간 진공 냉장으로 품질이 떨어질 확률을 3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구마 신선 저장에는 ‘자가 치료’ 기술이 활용된다. 고구마는 수확할 때 상처가 나면 보관 기간이 급속도로 짧아진다. 상처 부위로 병원균이 침투해 썩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 부위를 손본 뒤 섭씨 35도, 93% 습도 환경에 보관하면 고구마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고 당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치료가 완료된 고구마는 1년까지도 신선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