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첨단 신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세무·부동산 등 각종 전통 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스타트업과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전까지 갈등의 핵심이 ‘왜 스타트업이 중간에 끼어서 업체 소개·광고 수수료를 받으며 시장 질서를 해치느냐’였다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전통 사업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위법인가 아닌가’라는 논란까지 등장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기존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혁신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각종 직능 단체들은 “스타트업들의 무자격 중개는 결국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며 반발한다.

◇AI로까지 불똥 튄 영역 다툼

AI 기술 기반의 세무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하는 회사 ‘자비스앤빌런즈’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한국세무사회와 한국세무사고시회가 회사를 ‘세무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결과는 2월 초쯤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삼쩜삼’은 AI 알고리즘으로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세무 신고 업무를 처리하고, 세금 환급까지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배달⋅택배업 등 플랫폼 종사자가 늘면서 세무 신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삼쩜삼’이 이 틈을 파고들어 ‘대박’을 쳤다. 누적 가입자가 700만명이 넘는다. 그러자 세무사 업계가 강력 반발했다. 이 회사가 ‘일부 세무사의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세무 대리 업무를 진행하고 수수료를 챙겼다’며 경찰에 고소도 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닌 AI를 통해 일반인이 세무 신고를 하는 서비스가 과연 위법이냐는 것이다. 회사는 “기존 국세청 시스템에 맞춰 AI가 일반 시민을 대신했을 뿐인데 이게 왜 문제냐”는 입장이다. 반면 세무사 업계에서는 “AI를 운영하는 무자격자의 세무 대리 행위는 납세자 부담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사법 당국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AI 기반 스타트업 사업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AI 부동산 시세 산정 스타트업 ‘빅밸류’도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빅밸류’는 AI와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연립·다세대 같은 주택 시세를 자동으로 산정해 시중은행과 금융업체에 제공한다. 이를 두고 감평협은 “감정평가업자도 아니면서 주택 시세를 평가하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며 ‘빅밸류’를 형사 고발했다. 경찰 조사에서 ‘빅밸류’ 측은 ‘사람이 아니라 AI가 하는 시세 산정은 위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결국 “빅밸류가 정부가 특정 분야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주는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는 등 당국의 적법 판단을 받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감평협은 이의 신청을 낸 상태이다.

◇플랫폼 vs. 직능단체, 전쟁은 계속된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중개·광고’ 스타트업과 전통 사업자 간의 고소 고발전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용·의료 광고 플랫폼 ‘강남언니’ 운영사인 힐링페이퍼의 홍승일 대표는 27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환자를 알선해 수수료 이득을 취한 것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강남언니는 병원들이 입점해 미용 시술·성형 광고를 하고 이용자들이 수술 전후 사진과 후기를 올리는 앱이다. 이용자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모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과장광고와 불법 정보의 온상”이라며 고발해 재판을 받아왔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직접 소통을 내세우는 플랫폼 ‘로톡’은 수년째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한변협은 ‘로톡이 변호사 허위·과장광고를 통해 변호사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법 당국에선 3차례 ‘로톡’ 손을 들어줬다. ‘반값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내세운 스타트업 ‘다윈중개’ 역시 공인중개사협회와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사상 최대 투자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지만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며 “플랫폼과 전통 사업자의 상생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