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부장 기업들은 최근 한국에 직접 공장을 짓거나, 한국 기업과 합작 회사를 만들어 설비를 들여오는 방식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일 양국 외교 관계 악화로 인한 리스크를 회피하는 일종의 우회 전략인 셈이다. 이렇게 생산되는 소재·부품·장비는 ‘메이드 인 코리아’로 분류되는 데다, 원료를 들여와 한국에서 가공하는 방식이라면 일본 정부의 규제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지난해 12월 일본 화학기업 도쿠야마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1200억원을 들여 울산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2024년부터 반도체 웨이퍼 세척 소재로 쓰이는 고순도 용제를 연간 3만t씩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 대표 화학사인 스미토모화학은 작년 9월 한국에 100억엔(1040억원) 이상을 투자해 포토레지스트 제조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동안 스미토모화학은 오사카 생산분을 한국에 수출했지만, 앞으로는 일본에서 원료를 들여와 한국 공장에서 제조해 출하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 강소기업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 훨씬 이전부터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글로벌 톱 반도체 제조사가 있는 한국에 공장을 세우거나 투자해왔다. 그런데 2019년 일본 정부의 소부장 수출 규제가 일본 기업들의 이런 행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아시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이 직접 투자 혹은 합작법인 형태로 한국에 공장을 세우는 사례는 한 해 평균 1건 정도였다. 그런데 2019년 7월 이후 발표된 일본 회사들의 한국 공장 신·증설 건수만 총 5건이었다.
대표적으로 2012년 한국에 진출한 TOK(도쿄오카공업)는 핵심 품목인 포토레지스트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대상 품목에 오르자, 한국 송도 공장을 증설해 포토레지스트를 제조해 납품하고 있다. 한국 법인의 연 매출이 1700억원(2020년 기준)을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일본 소부장 기업이 한국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투자와 고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