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반일 정서에 편승한 소부장 국산화가 거꾸로 글로벌 원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특정 국가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반도체·배터리 소재의 경우, 이미 중국 의존도가 높아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에도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소재 분야 국산화는 결국 일본으로 가던 중국산 원료를 우리가 직접 수입해 만드는 것”이라며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 수입 비율은 2018년 41.9%에서 지난해(1~11월 기준) 13.6%로 줄었지만, 중국 비율은 같은 기간 17.7%포인트 증가했다. 공정에서 쓰이는 고순도 불산을 일본에서 사오는 대신 중간 원료인 불화수소를 중국서 수입해 국내서 가공하는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반도체가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을 위한 국가 자산이 된 상황”이라며 “미국의 우방국 중심 공급망 재편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대중국 의존도도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식의 소부장 국산화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이 일본·미국으로부터 소재와 장비를 수입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만들고,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TV 등 완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분업 체계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