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전남 여수시 국동항에서 열린‘여수해역 해상풍력발전사업 반대’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어민들이 어선에‘어민의 하나 된 힘으로 여수 앞바다를 사수하자’‘절대 반대!’등의 플래카드를 달고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영근 기자

8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시 국동항. 연막탄이 터지자 어선 600여 척에서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여수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여수 연·근해 어민들의 주 조업 해역에 4.7GW(기가와트) 규모 여수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추진되자 이에 반대하는 지역 어민들이 어선을 끌고 나와 해상 시위를 벌였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100t급 대형 멸치잡이 어선을 선두로 시위에 참여한 어선들은 ‘여수 어업인 생존권을 박탈하는 해상풍력단지 조성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여수 어민! 여수 바다! 다 죽이는 해상풍력단지 개발 결사 반대!’ 등의 플래카드를 내건 채 여수 앞바다 소경도를 향해 출발했다. 5km에 이르는 어선 행렬은 마지막 어선이 소경도를 돌아 다시 국동항에 입항할 때까지 1시간가량 이어졌다. 최광오 여수수산인회 회장은 “풍력발전 300여 기가 여수 앞바다에 빼곡하게 들어서면 여수 지역 어업은 씨가 마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무리한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은 전국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간척지 등 농지를 빌려 농사짓던 임차 농민은 태양광 패널 탓에 경작지를 잃고, 어민들은 풍력발전기에 어장이 사라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국동항 인근 해상에서 어선 600여 척이 해상풍력 발전기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여수시 연·근해에는 4.7GW 규모로 해상풍력 발전 300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 농·어민들이 일터를 빼앗길 처지에 놓이면서 반발도 커지고 있다./여수=김영근 기자

◇밀어붙이기 신재생 확대 정책....곳곳에서 마찰

정부는 작년말 기준 전남 신안(8.2GW)·여수(4.7GW), 울산(6GW) 등 전국 113곳에서 32GW 규모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 32개 규모다. 신안 앞바다에는 가로, 세로 1km 간격으로 1000기 풍력발전기가 바다에 꽂히게 된다. 이곳에만 서울의 2배 가까운 면적의 바다가 필요한 셈이다.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은 “배 여러 척이 그물 위주로 조업하는 우리 어업 특성상 풍력발전기와 같은 구조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 사옥도에서 12년째 쌀과 양파, 고추 등을 경작해온 50대 임차농 A씨는 올해부터 전체의 6분 1에 해당하는 5000평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는 “외지 주인이 태양광 업자에게 땅을 팔아버리는 바람에 (태양광 패널) 공사를 시작하면 꼼짝 없이 땅을 내줘야 한다”며 “매출은 2000만원 정도, 순익으로 따지면 1000만원 가까이 줄어들 판”이라고 말했다. 신안군 젓갈 타운의 한 상인은 “지난 1년 동안 사옥도 염전 절반에 태양광이 깔리면서 20kg에 5000원 하던 소금이 올해는 2만3000원까지 급등해 젓갈을 담가도 남는 게 없다”고 전했다.

신안군과 마주 보는 나주 평야 일대의 무안군도 태양광 확대에 몸살을 앓고 있다. 무안군 청계면의 한 주민은 “농지로 임대하면 평당 1000원인데 태양광 업자에게 빌려주면 평당 6000원, 많게는 8000~9000원까지 받는다”며 “20년 임대에 10년치 임대료를 한 번에 준다니 누가 농지로 그냥 두겠느냐”고 했다. 이덕한 농지 파괴형 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 반대 무안군 대책위원장은 “군(郡)에서 푼돈 주면서 주민 반대를 무마하려 해 주민 간 갈등만 벌어지고, 정작 농민들은 (태양광 패널에) 농사지을 땅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2017~2020년 여의도 31배 농지에 태양광 패널이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을 위해 전용한 농지는 2010~2016년 7년 동안 1553㏊(헥타르)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한 해에만 1438㏊ 급증하더니 2020년까지 4년 동안 8955㏊(89.55㎢)로 늘었다. 여의도 면적(2.9㎢) 31배에 달하는 농지가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목적으로 사라진 셈이다.

신재생 설비를 확대하면서 발전소 건설은 물론 송전선 확충을 두고서도 갈등은 커지고 있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투자 협약식’이 열렸던 임자대교 아래에 자리한 신안군 점암리 한 주민은 “지금도 집 근처로 송전선이 지나가는데 해상 풍력 단지가 생기면 우리 집은 아래위로 다 송전선에 갇히게 된다”고 했다.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국동항에서 열린‘여수해역 해상풍력발전사업 반대’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어민들이 어선에‘어민의 하나 된 힘으로 여수 앞바다를 사수하자’‘절대 반대!’등의 플래카드를 달고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여수 앞바다 해상 시위에는 지역 어선 600여 척이 참여했다. /여수=김영근 기자

무리한 신재생 확대에 반발해 전남 22시·군 중 여수·순천·무안 등 15시군에서는 농어촌 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가 조직돼 활동 중이다. 정학철 집행위원장은 “강원도 송전탑, 경기도 LNG(액화천연가스), 경북 풍력 등 전국적으로 농어촌 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연대회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동·서·남해는 물론 제주까지 앞바다를 메울 예정인 해상풍력을 두고서도 지역별로 어업인협의체가 구성돼 활동 중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독일도 에너지 전환 추진 과정에서 상당수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자 독립 민간 기구를 만들어 갈등 해결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각종 에너지 문제를 다룰 기구를 만들고 주민의 수용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