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들은 너무 꼭 맞춰 조립하려다 여러 번 구멍을 뚫는데, 시골 지역에선 빈 구멍에 벌이 알을 깝니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양시 한샘서비스 본사 4층. 작업복 차림에 목장갑을 낀 청장년 남성들이 부엌용 가구 조립 광경을 지켜봤다. 한 남성이 부엌용 장의 기둥을 세우고 드릴로 나사를 고정한 뒤, 문을 달 위치를 줄자로 재 사인펜으로 체크했다. 시공기사 30년 차 교관이 매 단계 조언을 하고 직접 시범도 보였다. 경험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벌 얘기를 교관이 들려주자 남성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현장은 국내 1위 가구 업체 한샘의 자체 교육기관 ‘한샘아카데미’의 부엌 시공기사 과정. 수강생은 고교 졸업생부터 장년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수강생 노모(42)씨는 16년 차 영업사원으로 연봉 6000만원을 받았지만 지난 연말 회사를 그만두고 이 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기술직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시도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샘·LX하우시스·현대리바트 ‘시공 아카데미’ 개설
코로나 사태 이후 리모델링·인테리어 시장이 활황을 누리면서 가구 업체들이 시공 기술자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 한샘이 지난해 1월 가장 먼저 한샘아카데미를 설립해 지금까지 3500명 수료생을 배출했다. 올해도 2000명을 양성해 시공 기사를 1만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LX하우시스는 지난해 12월 LX Z:IN 시공아카데미를 개관, 연 3000명씩 인테리어 시공 전문가를 배출할 계획이다. 현대리바트도 지난해 4월 경기도 일자리재단과 홈 인테리어 시공 전문가를 육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간 80명의 시공 전문가를 키워내기로 했다.
가구·인테리어 기업들이 아카데미를 잇따라 설립하고 나선 건 어깨너머 배우는 기존 도제식 교육으로는 급증하는 시공 기사 수요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은 2021년 17조원에서 2025년 37조원, 2030년에는 44조원대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도제식으로는 일 배울 곳 찾기도 힘들고, 찾더라도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작업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이 직접 시공 전문가를 육성하고 나선 것이다.
◇인테리어 시장 활황에 시공 기사 인기
시공기사 지망생들은 주로 20~30대 청년층이다. 젊은 층에선 IT 기업이 인기지만, 컴퓨터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 이 중에서는 기술을 익히려는 수요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샘아카데미 수강생 노현성(23)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다녀와 공장을 다녀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인테리어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며 “시공 기술을 배우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고 월 수입도 웬만한 직장인 못잖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시공기사 몸값이 뛰면서 직장인 수강생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한샘은 작년 시공기사 임금을 전년보다 평균 20% 올렸고, 현대리바트도 올해 시공기사 인상을 크게 올리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샘아카데미에선 공구 사용·재단 작업·시공 실무 등 최소 10일에서 최대 2개월까지 기초·실습교육을 받는다. 이를 수료하면 한샘 협력업체의 현장에서 시공 전문가를 돕는 조수 과정을 6개월~1년간 거치고, 이후 독립적인 기술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다시 아카데미에서 받을 수 있다. 수강료는 전액 무료다. 매 과정 20여 명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5:1까지 올라갔다.
LX의 경우 인테리어 기본 공사부터 창호·주방·욕실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끝내면 LX하우시스가 협력업체 채용을 주선한다. LX도 해당 교육을 국비 지원 교육 과정으로 등록해 수강생들이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