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수출 증가세는 둔화하고 수입은 늘면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3개월 연속 적자가 가시화됐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대규모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를 이어갔던 2008년과 판박이다. 당시와 비교해 국가 채무, 가계 부채 등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외부 변수에 더 취약해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수출 증가세가 점차 둔화하는 가운데 수입은 여전히 늘면서 무역 적자가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된다.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달 20일까지 무역수지는 16억7900만달러 적자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경우 올 상반기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컨테이너 하역 작업이 진행 중인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 모습. /연합뉴스

◇14년 만의 적자 지속… 2008년 이후 처음

무역수지는 코로나 충격이 강타한 2020년 4월 적자를 나타낸 뒤 지난해 12월, 20개월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12월 4억2600만달러(5078억원) 수준이었던 적자 규모는 지난달에는 역대 최대인 48억3400만달러까지 급증했다. 이달 들어서도 1~20일 적자 폭이 16억7900만달러까지 확대되면서 지난 82일간 적자 규모만 70억달러에 육박했다. 2007년 12월 8억6500만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5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졌던 2008년 초와 비슷한 추세다. 글로벌 금융 위기 조짐이 보이던 2008년 1~2월, 국제 유가가 올해처럼 배럴당 90달러 안팎으로 치솟으며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1월 40억4300만달러, 2월 14억46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던 당시에도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적자의 주요인이었다”며 “무역수지 적자 흐름이 5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2008년의 데자뷔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경제가 침체기를 맞으며 수출 증가세도 둔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31.9%로 정점을 찍은 뒤 1월(18.3%)과 2월(13.1%)에 10%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월평균 150억달러에 달했던 대(對)중국 수출액이 올 1월 10% 이상 줄어든 133억달러에 그친 게 직격탄이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 지정학적 요인, 글로벌 물류난 등 삼각 파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원자재 가격 상승세는 최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국제 유가는 2014년 이후 7년여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전체 수입액 6151억달러 가운데 원유는 10%가 넘는 670억달러에 달했고, 올 1월엔 수입액 602억달러 중 22%인 132억달러가 원유와 LNG(액화천연가스)였다. 현재 배럴당 90달러대를 나타내고 있는 국제 유가가 앞으로 100달러를 돌파하면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골드만삭스는 배럴당 125달러, JP모건은 150달러까지 유가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계속되는 글로벌 물류난도 수출 확대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수출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북미까지 물류비는 지난해 컨테이너 하나당 5000달러 수준에서 올해는 1만6000~1만8000달러까지 올랐다. 한 수출 기업 임원은 “미국 현지 항구 하역 작업은 늦어지고, 배는 부족하다 보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며 “웃돈을 줘도 배를 잡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엉키면서 국내 제품 생산도 타격을 받고 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무역연구원장은 “물류난까지 겹치며 일부 원자재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급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2008년 309조원이었던 국가 채무는 지난해 965조원까지 불었고, 가계 부채도 지난해 3분기 1845조원까지 늘며 올해 2000조원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역 적자가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총체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무역 적자가 이어진 2008년 당시도 연말 대선 이후였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이어지면서 관료들의 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커진다”고 말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선거를 의식한 돈 풀기와 포퓰리즘 정책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말했다.